(서울=연합뉴스) 최재석 선임기자 = 미국의 핵무기 개발 정보를 소련에 넘긴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로젠버그 부부는 1953년 6월19일 사형이 집행됐다. 미국 역사상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간첩 혐의로 민간인이 사형당한 첫 사례다. 부부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고 기소와 재판과정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한 데다 그들이 전달했다는 기밀 정보의 가치도 논란이 됐지만 끝내 형장의 이슬이 됐다. 당시 미국 안팎에서 활발한 구명운동이 벌어졌지만 사형 집행을 막지 못했고 이후에는 로젠버그 부부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동서 냉전이 한창인 시기에 발생한 이 사건은 미국의 '매카시즘' 광풍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가 됐고, 지금도 사법적 정의가 제대로 지켜졌는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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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사법적 정의가 부정되고 사형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된 역사가 있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다. 대한민국 법원은 2007년 1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에 대한 무죄를 선고했다. 국가폭력에 의해 선량한 시민들이 목숨을 잃은 지 32년 만에 국가기관의 사건 조작을 인정한 결과다. 그러나 그들 8명은 살아 돌아올 수 없다. 앞서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상고를 기각했고, 사형이 확정된 8명은 다음 날 새벽 차례로 형이 집행됐다. 이날은 치욕스러운 '사법 살인의 날'로 꼽힌다. 국제적으로도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지탄을 받았다. 이 사건은 사형제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주요한 사례로 인용된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사형이 이뤄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2024년 사형 건수는 1천518건으로 전년보다 32% 증가했다. 작년 사형 집행이 가장 많았던 나라는 이란(972건)이다. 미국도 2023년 1건에서 작년 25건으로 크게 늘었다. 사형 집행이 많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이나 북한, 베트남은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다. 작년 말 기준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는 113개국이고, 유럽은 사실상 사형제를 폐지한 대륙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사형제 폐지가 의무다. 여전히 법적으로 허용되고 있거나 실제 집행이 이뤄지는 국가가 50여개국으로 추산된다.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난 6월 3년 만에 사형이 집행됐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마지막 사형 집행이 이뤄진 후 더 이상 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지만 법적으로는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수감 중인 사형수는 50여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0월 10일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다. 비정부기구 연대조직인 '세계사형반대 연합'이 2003년 이날을 제정해 국제적으로 기념한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장은 9일 기념 성명을 내고 "사형은 모든 이에게 살인을 금지하면서 국가가 공익적 목적 달성을 위해 생명권을 부정한다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사형 집행이 재개될 가능성은 작지만 이제는 입법을 통한 완전한 사형제 폐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시민단체들은 주장한다. 윤석열 정부 초기인 2023년 8월 당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사형 집행시설을 보유한 4개 교정기관에 관련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흉악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던 때여서 경각심을 일깨우는 차원이라는 해석을 낳았지만 뒷맛이 개운찮았다. 새 정부 들어 어떤 정책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사형제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
bondong@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10일 15시18분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