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기업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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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7.09 17:47 수정2025.07.09 17:47 지면A31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제출됐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원칙적으로 1년 이내 소각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임직원 보상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보유가 허용된다. 김 의원은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유지에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상법에서 자사주 처분을 이사회 결정에 따르도록 한 것은 2011년부터다. 그 전엔 바로 소각하거나 1년 안에 처분하게 돼 있었다. 이처럼 바뀐 것은 2000년대 들어 소버린의 SK 공격처럼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개입 시도가 잇따르는데도 국내 기업은 경영권을 방어할 어떤 수단도 없다는 경제계의 호소가 받아들여져서다. 지금도 한국엔 1주만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황금주, 특정 주식에 의결권을 더 많이 배정하는 차등의결권, 적대적 인수합병(M&A) 때 기존 주주가 싼값에 신주를 매수할 수 있는 포이즌필 등 외국에선 일반화한 제도 자체가 없거나 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돼 있을 뿐이다. 2011년 제도 변경 덕에 적잖은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활용해 투기자본의 공격을 이겨내거나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정황을 감안하면 다양한 경영권 방어 장치를 먼저 제도화하지 않고 자사주 소각부터 강제하는 것은 순서가 틀린 정책 방향이다. 기업을 투기자본 앞에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격이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면 기업으로선 주가 부양과 동시에 미래 투자 재원을 쌓아두기 위해 자사주를 사들일 이유가 사라진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안고 있는 더 큰 문제는 국가가 헌법 테두리를 벗어나 기업 경영에 과도하게 간섭하게 된다는 점이다. 헌법 23조는 기업을 포함한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119조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를 존중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자사주 활용 여부는 전적으로 기업이 알아서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헌법 정신이다. 외국에서도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주주환원 확대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유도한다면 강제할 일이 아니라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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