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본은 왜 'IP 경영'에 주목했나…한국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넘어서는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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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환 김앤장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왼쪽)와 박경렬 KAIST 교수정철환 김앤장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왼쪽)와 박경렬 KAIST 교수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IP(Intellectual Property, 지식재산)과 무형자산으로 기업 가치를 설명해야 한다.” 최근 일본의 기업 경영 전략과 제도 개혁을 관통하는 메시지다.

기업가치의 원천이 유형자산에서 IP와 무형자산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를 전략적으로 관리하고 효과적으로 투자·활용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IP와 무형자산을 기업 경영의 중심으로 삼아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이를 투자자 소통의 언어로 끌어올렸다. 이러한 변화의 출발점은 2014년 발표된 '이토 리포트'였다.

당시 일본 경제산업성 주도로 발간된 이 보고서는 낮은 자기자본이익률(ROE), 정체된 주가, 글로벌 투자자들의 외면 등 일본 기업이 처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책적 제안이었다. 보고서는 기업가치 원천이 유형자산에서 무형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인식 전환을 촉구하며, 장기 성장과 혁신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ESG 정보 공개 확대, 무형자산 투자 강화, 투자자와의 대화 확대 등을 제안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21년 도쿄증권거래소의 기업지배구조코드(CGC) 개정으로 구체화됐다. 개정된 코드에는 '경영 전략 수립 시 IP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고 'IP 투자에 대해 이사회가 실효적으로 감독'할 것을 명시했고, 2022년에는 일본 내각부가 'IP·무형자산의 투자·활용 전략의 공개(공시) 및 거버넌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이를 업데이트하면서 이 흐름은 더욱 제도화됐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기업이 IP·무형자산의 현황을 진단하고 미래 전략을 수립·실행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며, 이러한 전략과 성과를 투자자와 금융기관에 투명하게 공개·설명할 수 있도록 지침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기업은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고,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더욱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으며, 상호 간의 신뢰와 소통이 강화되는 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현장에서도 감지된다. 일본의 대표 기업 아사히카세이, 히타치 등은 IP Landscape 분석을 통해 자사의 핵심 기술이 어느 영역에서 강점을 가지는지 파악하고, 경쟁사 대비 우위를 기반으로 성장 전략, 사업 포트폴리오 정비, 투자 전략 수립까지 이어지는 정교한 IP 경영을 실현하고 있으며 이를 적극적으로 IP·사업 보고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일본 상장사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정부 후원으로 올해부터 우수 사례를 선정해 포상하는 제도도 운영 중이며, 해외 주요 공관은 '일본 과학기술 뉴스레터'라는 정기간행물을 통해 일본의 신기술개발과 IP들을 적극 소개하며 과학기술외교 전략의 한 축으로 지식재산을 다루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지속적인 저평가, IP투자전략 기업공시 내 미비한 반영, 투자자와 소통 부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기업가치 상승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국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기준으로 GDP 대비 특허 출원 세계 1위, 절대 출원 건수 기준 세계 4위라는 'IP 강국'이지만, 정작 기업의 지식재산이 수익성·사업성과 연결되는 구조는 아직 미흡하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도 IP·무형자산 중심의 제도 혁신에 나서야 한다. 기업의 IP 전략과 활용 내역을 정성·정량적으로 공시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가이드를 정비하고, 투자자와 소통할 수 있는 공시 언어를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단순한 기술 투자나 R&D 지원을 넘어 IP의 전략적 활용을 유도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국제 통상 질서와 기술 표준, IP 보호 체계 등 다자 규범의 형성과 협상 과정에서 기술 주권을 확보할 수 있는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기술의 시대다. 하지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IP가 얼마나 전략적으로 활용되고 있는지를 시장에 설명하고,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는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이제 우리도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한국 기업은 지식재산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설명하는가? 그리고 정부는 어떻게 이를 뒷받침할 것인가?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한국이 단순한 '기술 강국'을 넘어 '가치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정철환 김앤장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 chjung@kimchang.com

박경렬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park.kr@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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