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초 미국 뉴욕은 빈집과 노후 건물이 늘면서 유령 도시처럼 황폐해졌다. 가파른 인플레이션에도 뉴욕시가 임대료 인상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집주인이 방치하거나 떠나면서 한때 빈집이 30만 가구에 달했다.
경제학 입문서 <맨큐의 경제학>이 시장 원리에 어긋나는 가격 통제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제시한 사례다.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는 “폭격 외 도시를 가장 확실하게 파괴하는 방법은 임대료를 규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임대료 인상을 막으면 결국 공급이 줄어 세입자와 도시 전체가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뉴욕에서 다시 임대료 통제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24일 치러진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조란 맘다니 뉴욕주 하원의원이 뉴욕시장 후보로 사실상 선출됐기 때문이다. 우간다 태생의 33세 인도계 무슬림 정치 신인이 3선 뉴욕주지사를 지낸 앤드루 쿠오모를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맘다니는 아파트 임대료 동결, 버스요금 무료화, 시간당 최저임금 두 배 인상 등 급진적 공약을 내세웠다. 필요한 재원은 고소득층 증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충당하겠다고 한다. 뉴욕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해 그의 11월 본선 승리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 월가는 벌써 충격에 빠졌다. “뉴욕을 버리고 본사를 플로리다나 텍사스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맘다니는 100% 공산주의 광인”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쿠오모의 성 추문과 맘다니의 소셜미디어 선거 전략만으로 이변을 설명하긴 어렵다. 불법 이민자 추방 등 트럼프식 강경 보수 정책에 대한 반발과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민주당 주류를 향한 실망이 맞물려 급진 좌파가 부상한 것이다. 맘다니는 버니 샌더스 연방 상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 등 좌파 정치인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월가는 그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무소속 출마를 예고한 에릭 애덤스 현 뉴욕시장에게 수천만달러를 지원할 태세다. 세계 금융의 중심지 뉴욕은 다시 ‘사회주의 실험장’으로 돌아갈 것인가.
서욱진 논설위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