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정부는 경제 재도약과 국가 대전환을 위해 'AI 3대 강국' 실현이라는 목표를 내세웠다. 'AI 기본사회' '모두의 AI' 구상 아래 100조원 투자를 약속했으며, 핵심 정책은 '소버린(Sovereign) AI'다.
소버린 AI란 '자주권을 가진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주권의 핵심은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가 독립적으로 운영·관리하는 거대언어모델(LLM) 기반 플랫폼을 갖추는 데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갤럭시 언팩 행사에서 갤럭시Z 플립7에 자체 설계·생산한 AP칩 엑시노스 2500을 공개했다. 삼성은 퀄컴 스냅드래곤 등 외부 칩을 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개발비를 투입해 핵심 기술을 자립하려 했다.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의존도를 낮추는 시도는 기술 독립이라는 전략적 이유에서 비롯됐으며, AI 정책 방향 역시 이런 인식에서 출발해야 함을 보여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달 '모두의 AI' 프로젝트에 1조245억원을 투입할 계획을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글로벌 AI 모델 성능의 95% 이상을 실현할 독자 LLM 개발이다. LLM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서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생성하는 AI로, 활용 범위는 텍스트 창작과 번역, 코딩, 이미지 및 음성·영상 생성 등 멀티모달 영역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소버린 AI 정의와 사업 범위, 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에 몇 가지 제언을 덧붙인다. 첫째, LLM 독자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나 AI는 LLM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글로벌 수준에 버금가는 LLM을 목표로 하되, AI 반도체, 컴파일러, 시스템 소프트웨어, 산업별 응용 소프트웨어 등 AI 생태계 전체에 대한 균형 발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이미 퓨리오사AI, 리벨리온 등 세계적 AI 반도체 기업이 있고, AI 핵심 메모리인 HBM 분야에서도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적 역할을 한다. 이런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메모리 중심 AI 모델과 컴퓨팅 기술 개발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야 하며, 이 모두가 완성되어야 진정한 소버린 AI가 실현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소버린 AI 정책은 반드시 산업 현장과 연계되어야 한다. 현 정부 전략에는 온디바이스 AI, 즉 AI가 내장된 산업과의 접점이 아직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세계 6위의 제조업 강국이며, AI 반도체를 적용할 대규모 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스마트폰 화질 개선, 음성인식, 번역 및 통역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스마트 가전(TV, 청소기, 세탁기, 에어컨 등)에서 AI 활용도가 급증할 전망이다.
방위산업 무기체계까지도 AI 탑재가 가능하다. 이런 현장 수요와 연계해 대기업, 반도체 팹리스,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온디바이스 AI에서 글로벌 선도도 노릴 수 있다. 현재 세계 시장 1% 수준인 국내 팹리스를 키우는 기회로도 삼아야 한다. 온디바이스 AI 칩에 탑재될 모델은 더 작고 경량화된 AI가 필요한 만큼, 메타의 라마3 등 오픈소스 언어모델을 특정 산업 분야에 맞춰 최적화하는 전략도 유효하다.
셋째, 정부 과제 선정은 혁신을 촉진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주로 기획을 통해 만든 지정 과제뿐 아니라 자유공모제를 병행해 다양한 혁신적 과제가 나오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 AI 분야는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천문학적 개발비가 들며, 기술 융합과 적용 분야도 예측 불가할 정도다.
AI 기반 산업은 아직 절대 강자가 없는 초기 단계다. 지금 정부, 기업, 대학이 힘을 합친다면 글로벌 AI 주도권 경쟁에서 충분히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AI 대전환 시대의 기회다. 정부가 소버린 AI 전략을 체계적으로 수립·실행하고, 산업 전반 생태계를 고르게 육성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다.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반도체공학회 고문 yskim3@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