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톡톡] 요즘 애들의 믿을 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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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 톡톡] 요즘 애들의 믿을 구석

15만 명이 넘는 방문객, 얼리버드 티켓의 조기 매진.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다시 한번 책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것도 ‘지금 세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말이다.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믿을 구석(The Last Resort)’. 인공지능(AI)이 뉴스와 시까지 쓰는 시대에 왜 여전히 사람이 쓴 책이 중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답은 도서전의 생생한 현장에 있었다. 줄을 서서 문장 굿즈를 구매하고, 작은 출판사 부스를 꼼꼼히 둘러보며, 한 문장에 깊이 공감하며 멈추는 사람들의 모습은 “요즘은 책을 읽지 않는다”는 편견과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요즘 세대는 책을 단순히 ‘읽는 행위’가 아니라 ‘경험하고, 수집하고, 해석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책장을 덮은 후의 여운보다 책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믿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문장을 캡처하고, 북디자인에 집착하며, 시집 굿즈와 미니북에 열광하는 현상은 모두 같은 맥락이다. 이른바 ‘텍스트힙’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책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애정 표현이다.

어쩌면 AI 시대에 출판은 비효율적인 사업일 수 있다. 수익은 적고, 진행 속도는 느리며, 제작 과정은 복잡하다. 그러나 사회가 효율성만을 강조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비효율 속에서 실체가 있는 것, 진짜 경험과 같은 진정성 있는 것을 찾게 된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고, 감정이 담긴 문장을 곁에 두고 싶으며, 실체감 있는 기록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빠른 정보보다는 오래 머무는 경험을, 차가운 알고리즘보다는 내 마음을 이해하는 한 권의 책을 원한다.

도서전의 인파는 단순한 전시 성공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위기와 혼란,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책은 여전히 의지할 구석이 될 수 있다는 증거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은 개막식에서 “삶이 불확실하고 고단할수록, 마음 둘 곳을 찾게 된다. 책은 언제나 믿음직한 구석이 돼 왔다”고 말했다.

책이 사라진다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책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사랑받고 있는가다. 시대는 변했고, 독자의 태도도 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책은 우리를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보루다. 그래서 책은 늘 그렇듯 모든 세대에게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며 계속 공감받고 의미 있게 여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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