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강남 집값 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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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훈 칼럼] 강남 집값 잡기

서울 강남은 욕망의 정점이다. 강남 입성은 성공의 증거이자 한국 최고의 명품 회원권 확보를 의미한다. 반바지와 슬리퍼 차림으로 공원 백화점 병원 맛집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도시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지방 부호, 해외 자산가, 심지어 중국인까지 몰려든다. 누구나 돈을 벌면 먼저 강남에 집을 사고 싶어 한다. 강남 집값 급등은 지방 소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회적 위화감은 이미 위험 수위다. 남의 지갑이나 계좌는 열어볼 수 없지만 남의 집은 언제든지 쳐다볼 수 있고 가격도 확인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저축(투자)과 소비로 가야 할 돈이 아무런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고정자산에 묶여버리는 폐해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오죽하면 한국은행 총재가 젊은이들 걱정에 금리를 못 내리겠다고 하겠나.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정부의 초강력 대출 규제로 강남 집값이 잡히겠느냐고. 시장은 고개를 젓는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대규모 공급 대책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노무현, 문재인 정부도 그랬지만 전통적으로 민주당 정부는 공급 확대에 미온적이다. 강남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이 서울, 나아가 수도권 집중도를 더욱 부추길 뿐만 아니라 투기 바람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하지만 대출 규제 같은 수요 억제책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규제가 풀리길 기다리는 수요가 계속 쌓인다는 것이다. 혹여 가격이 떨어지면 더 폭발적으로 쌓인다. 예를 들어 강남 30억원짜리 집이 25억원으로 떨어지면 대기 수요가 다섯 배, 열 배로 늘어나는 식이다. 이런 구조에선 규제의 완급 사이에서 일어나는 계단식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다. 또한 집값 억제를 이유로 시민의 경제적 자유와 재산권 행사를 계속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제 강남 집값이 떨어지는 극단적 경로를 검토해본다. 첫째 경제가 폭삭 망했을 때다. 1991년 일본 버블경제 붕괴, 1998년 한국 외환위기, 2000년 세계적 닷컴버블 붕괴, 2008년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가격 그래프가 정확하게 말해준다. 두 번째는 재정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전환하는 경우다. 부동산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고금리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이자를 내려야 할 판에 도저히 쓸 수 없는 카드다. 마지막은 집값이 오를 수 있는 한도까지 오르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너무 높아진 가격’ 자체로 추격 매수 의지를 꺾어버린다는 의미다. 이 방안의 치명적 약점은 어떤 정권도 국민들의 원성과 비난을 버텨내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돌고 돌아 최종 선택지는 다시 공급이다. 강남 한복판과 경북 산간 오지에 같은 면적, 같은 사양의 아파트를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분양가는 몇 배, 몇십 배 격차가 나겠지만 건축비는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이유는 땅값에 있다. 강남 집값이 비싸다는 것은 그만큼 토지 가격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규제로 개발이 제한돼 가용 토지가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땅값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야 분양가도 떨어진다. 지주들 말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은 여전히 쾌적하다. 녹지 비율이 서울 어느 지역보다 높다. 도심 속 야산들 속에 공원과 산책로가 넘쳐난다. 이런 멋진 인프라가 높은 집값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공급 확대를 꾀한 우파 정부들이 단명한 탓에 지난 십수 년간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않았다.

주민들은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강남 집값의 안정은 주택 개발 밀도를 높여 대기 수요를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수명이 다한 그린벨트를 풀고 건폐율·용적률을 끌어올려 토지이용 효율을 높여야 한다. 골프장이나 헬스클럽 회원권을 보라. 가격은 어김없이 회원 수에 반비례한다. 강남 집값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많은 국민이 그토록 살아보기를 갈망하는데, 그 높은 진입장벽을 한 번 내려주면 어떤가. 마포 용산 성동도 순차적으로 따라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수도권 비대화는 수도권 억제로 막을 것이 아니라 지방 소득과 일자리 증가로 풀어야 할 문제다. 공급 확대가 더 많은 인구 유입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지방에 산재한 미분양 수십만 채부터 걱정하는 것이 순서라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엔 집을 더 지어주고, 사람들이 살기 싫다고 하는 곳엔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 최고의 부동산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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