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도는 각 주주가 가진 주식 수에 뽑아야 할 이사 수를 곱한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해 투표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A회사가 주주총회에서 갑(甲), 을(乙), 병(丙) 세 명의 이사를 뽑는다고 하자. A회사 주식 10주를 가진 주주는 30개의 의결권을 갖고, 1000주를 가진 대주주는 3000개의 의결권을 갖는다. 그런데 소액주주들이 정(丁)을 이사 후보로 주주제안하면 이사 후보는 4명이 된다. 대주주는 3000개의 의결권을 갑, 을, 병 세 명에게 각 1000개의 의결권으로 투표해 세 명을 선임하고자 한다. 그런데 다수의 소액주주가 결집해 정에게 1000표 이상을 몰아주면 정이 당선되고 갑, 을, 병 중 한 사람은 탈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는 지난 3일 상법을 개정해 감사위원회 위원인 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이 가진 모든 주식을 합한 수의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이른바 ‘합산 3% 룰’)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감사위원인 이사는 전원 외부 주주들이 선임할 수 있게 보장됐다.
합산 3% 룰과 집중투표 동시 채택을 가정한 이사 선임을 시뮬레이션해 봤다. 감사위원회를 반드시 설치해야 하고, 위원 수는 3인 이상이어야 하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기업 206곳을 대상으로 했다. 그 결과, 외부 또는 외국계 주주가 주주제안한 후보가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대기업은 외국인 주주가 50%를 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이들 기업의 이사 40%는 내부 주주가, 60%는 외부 또는 외국 주주들이 선임할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국내외 주주행동주의자들이 자격 미달 후보, 심지어 경쟁사 이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19년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의 경쟁사 대표를 현대차의 사외이사 후보로 주주제안한 사례가 있다.
합산 3% 룰도 상법의 대원칙인 주주평등 원칙과 의결권 비례 원칙 위반이고, 대주주의 재산권을 일부 박탈해 위헌적이며, 세계에서 이런 이상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도 한국밖에 없다. 집중투표제도를 의무 시행하는 국가는 러시아, 중국, 멕시코, 칠레 정도다. 일본은 1950년 이를 의무화했다가 1974년 폐지했다. 1940년대 미국 22개 주 회사법에서 이를 의무화했으나, 1950년대 이후 심각한 부작용으로 대부분 주가 의무화를 폐지해 정관 자치에 맡기고 있다. 지금은 기업이 별로 없는 애리조나, 네브래스카, 웨스트버지니아 등 몇몇 주에서만 의무화돼 있다. 그러나 이들 주에서는 합산 3% 룰 같은 제도가 없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기업 세계도 정치 조직처럼 승자독식 구조를 갖고 있다. 국가와 기업 운영에는 정치적 안정, 극도의 효율성, 극단적 분열 방지, 선거 결과의 단순화 등으로 명확한 승자 결정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선거에서 50% 미만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도 장관 인사권을 100% 행사한다.
그런데 집중투표제와 합산 3% 룰을 결합해 이사회 구성원 과반수와 감사위원 전원을 검증되지 않은 외부 인사로 채우도록 법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는 대통령이 장관 과반수를 야당이 추천한 인물로 채우도록 법으로 강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주총회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주주 집단 간 갈등과 투쟁의 장이 되며, 이사회는 각 주주 집단의 대리전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기업은 건전한 지배구조와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는다. 이것만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