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월, 18만명이 방문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된 유럽 최대 기술·스타트업 전시회 '비바 테크놀로지 2025'의 메인 테마는 인공지능(AI)이었다. 그동안 AI 활용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었던 유럽 기업들조차 앞다퉈 자신들의 AI 도입 성과를 발표하며 변화 물결을 실감케 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업이 생성형 AI와 AI에이전트 도입에 열을 올리는 와중에, 정작 중요한 부분이 간과되고 있다. AI 에이전트의 성능이나 보안, 규제 준수 등 기술적 검증에만 집중하다 보니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협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AI 에이전트와 기존 챗봇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율성과 유연한 상호작용 능력이다. 예를 들어 고객 상담 에이전트가 매뉴얼과 FAQ를 바탕으로 답변을 생성하고 문의 유형을 분류하는 업무를 수행한다고 가정해보자. 벤치마크 데이터셋으로 정확도를 측정하는 것만으로는 이 에이전트의 진정한 유용성을 평가할 수 없다.
과거 챗봇은 새로운 이슈나 예외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이 FAQ를 추가하고 분류체계를 수정해 재학습시키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이런 끊임없는 유지보수 부담 때문에 결국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사람이 AI의 수발을 드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AI 에이전트는 다르다. 대응하기 어려운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분류체계 개선안을 제시하거나, 매뉴얼에 없는 정책이나 프로세스 수립을 관리자에게 건의할 수 있다. AI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업무 개선을 함께 고민하는 동료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진정한 사람-AI 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AI가 사람과 협력해 업무를 스스로 고도화한다 해도 아직 한 가지 한계를 지닌다. 개별 AI 에이전트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 전체를 혼자 처리하기는 어렵다. 사람끼리도 분업과 협업이 필요하듯, AI 역시 다르지 않다. 멀티 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기업 내부에는 자체 개발한 에이전트부터 코파일럿 같은 서비스 기반 에이전트, 외부 AI 플랫폼 기반 에이전트까지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이들 간의 협업 없이는 AI 도입 효과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부서 간 소통이 안 되는 조직이 최악의 조직인 것처럼 AI도 마찬가지다.
기술 파편화를 막기 위해 MCP(Model Context Protocol), A2A(Agent-to-Agent) 같은 프로토콜이 등장했지만, 각 기업의 상황에 맞는 오케스트레이션을 구현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랭코드의 기업용 생성형 AI 에이전트 플랫폼 CXP는 이런 협업 관점에서 설계됐다. 사람의 피드백을 에이전트에 반영하는 것은 물론, AI가 자체 판단을 통해 파악한 개선방안을 관리자에게 제시한다. 문서 간 내용 충돌을 발견하면 어느 내용을 정답으로 삼을지 결정을 요청하고, 기존 문서로 대응되지 않는 반복 질문들을 정리해 보여준다.
AI 간 협업에서도 CXP는 자체 에이전트뿐만 아니라 코파일럿, 기존 레거시 챗봇까지 통합 활용할 수 있는 허브를 제공한다. 개별 AI의 코드 수정 없이도 CXP 허브가 래퍼와 어댑터 역할을 수행해 즉시 연동이 가능하다.
AI 에이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고객사에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 중 하나는 “지금 사람끼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이다. AI 논의는 대부분 일방적인 평가와 검증에 치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업무는 항상 협업의 개념이 중요하다. AI를 검증의 대상으로만 간주할수록, 사람이 AI를 활용하고 협업하며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줄어든다. AI 에이전트라는 새로운 동료를 어떻게 조직에 추가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다.
AI 에이전트 시대의 핵심은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사람과 AI, 그리고 AI 간의 효율적인 협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적 성능 검증을 넘어 협업 관점에서의 설계와 운영이 필요하다. AI가 진정한 디지털 동료가 되려면 함께 성장하고 학습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민준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 초거대AI추진협의회원·랭코드 대표 admin@langcode.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