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첫 취임 당시 나는 성동구의 골목골목을 걸으며 ‘어떤 도시로 나아가야 할까’를 끊임없이 자문했다. 그중에서도 성수동 골목은 유난히 마음을 붙잡았다. 빛바랜 붉은 벽돌과 녹슨 셔터, 세월의 먼지를 뒤집어쓴 폐공장들 속에서 나는 성수동의 잠재력을 봤다. 넓은 평지와 준공업지역, 낮은 지가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즈음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래된 공장을 리모델링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예술가들, 사회적 가치를 꿈꾸며 소셜벤처 창업에 나선 청년 혁신가들이 성수동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낡은 공간에 창의와 활력을 불어넣으며 산업을 이끄는 인재이자 변화를 부르는 주체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곳을 바꿔야 한다’가 아니라 ‘이곳의 이야기를 어떻게 지켜낼까’를 먼저 생각했다. 변화는 사람의 삶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믿음으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성수동을 찾았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달은 건 하나였다. 성수동의 미래를 바꾸는 힘은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사람이 모여드는 도시, 우리가 가야 할 길이었다.
그래서 허물지 않고, 남기고, 새롭게 채워 넣었다.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을 성수동의 정체성이자 브랜드로 지켜냈고, 새로 짓는 건물에는 붉은 벽돌을 사용하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해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풍경을 만들어갔다. 높아진 임차료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터전을 잃지 않도록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하고 지역 상권의 자생력을 지켜냈다. 버려진 창고는 창의와 문화가 숨 쉬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성수동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성수동은 낡은 산업지대에서 서울에서 가장 젊고 감각적인 거리로 거듭났다.
사람이 모이자 기업이 뒤따랐다. SM엔터테인먼트, 무신사, 젠틀몬스터, 크래프톤 등 시대의 흐름을 이끄는 기업들이 잇달아 성수동에 둥지를 틀었다. 그 결과 성수동은 연 방문객 3000만 명을 넘어서는 활력의 도시로 성장했다. 기업은 두 배 가까이 늘었으며 지역의 경제적 가치는 10년 만에 3.5배 상승해 1조5000억원을 넘어섰다.
나는 모든 도시의 해답이 성수동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만 각 지역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가는 실험을 시작하길 바란다. 도시 재생의 본질은 현장을 오래 바라보고, 작은 변화를 포착하며, 때로는 기다릴 줄 아는 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도시의 성장은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길을 설계하고, 방향을 제시하며, 시민과 함께 멈춰 되돌아보는 일을 나의 역할로 여기고 있다. 도시가 좋아졌다는 말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체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믿는다. 그 ‘느낌’이 스며드는 도시, 그것이 내가 그리고 싶은 성수동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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