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美 신뢰 시험대 올린 트럼프 예산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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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美 신뢰 시험대 올린 트럼프 예산안

어느 나라든 정부와 정치인이 만든 예산안이 원안 그대로 의회를 통과하기는 힘들다. 한국만 봐도 예산 처리 시기가 다가오면 국회의 각 상임위원회에서 예산안을 1차 심사한 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종합 조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회의원은 수많은 지역구 민원을 비공식적으로 정부나 예결위에 넣는다. 메모 한 장을 예결위원에게 전달해 예산 항목을 끼워 넣는 일이 잦아 ‘쪽지 예산’이란 말도 있다.

행정부나 정치인이 재정건전성을 지키기 힘든 것 또한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지역구 예산을 늘리거나 최소한 지켜야 정치 생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에 정치인은 예산 확보에 사활을 건다. 이들 때문에 누더기 예산이란 말도 나온다.

어려운 '재정건전성 지키기'

의회 정치를 한국보다 훨씬 앞서 시작한 미국도 이 같은 현실에서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대표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와 ‘웨스트 윙’만 봐도 사회복지, 재정 지출, 셧다운 위기 등이 정치 갈등의 중심으로 나온다. 이 과정에서 드라마 속 정치인은 협박과 협상 등으로 끊임없이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현재 미국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한때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아 지출 구조조정을 주도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공화당이 추진하는 예산안에 대해 “거대한 재정적자를 (10년간) 2조5000억달러 더 늘려 미국민에게 감당 불가능한 빚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의회는 미국을 파산하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가 예산안을 짜는 과정에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초심을 잃고 지출 항목을 늘렸다는 뜻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ne Big Beautiful Bill Act·OBBBA)이라고 이름 붙인 예산안은 최종 관문인 상원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일부 상원의원이 재정적자를 이유로 하원에서 넘어온 예산안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머스크 CEO와 비슷한 이유에서다.

시장이 정부 정책 응징할 수도

다만 예산안 통과를 위한 이 같은 진통이 정치 쇼에 그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 지도부가 부채 한도 상향의 다급함을 이유로 예산안 통과를 밀어붙일 가능성이 커서다. 예산안에 한 묶음으로 부채 한도 상향안이 들어가 있는데 이미 미국은 1월 초 부채 한도인 36조1000억달러에 도달했다.

미국 재무부는 채무 불이행을 막기 위한 특별 조치를 시행 중인데, 올해 8월이면 이런 특별 조치가 모두 소진될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이 와중에 속이 타들어가는 건 투자자다. 한때 미국 국채는 정치의 예측 가능함과 신뢰를 무기로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투자처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재정 지출을 줄이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약속은 재정적자를 늘리는 예산안으로 무색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를 부과하려 했을 때처럼 국채시장이 정부 정책을 응징하려는 시점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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