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민생과 밀접한 라면 등 생필품 가격 관리에 대대적으로 나설 태세다. 하지만 품목별 판매가격과 유통 구조 등에 대한 정교한 현황 파악 없이 진행되는 성급한 정책 논의는 별 효과도 없이 시장 혼란만 부를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흔히 ‘라면 사무관’ ‘빵 TF’ 등으로 희화화된 과거 정부의 인기영합식 물가 관리 정책이 왜 후유증만 남기고 실패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제 열린 2차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물가 문제가 국민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주기 때문에 현황과 가능한 대책이 뭐가 있을지 챙겨달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최근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그러더라.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자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은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가공식품 위주로 눌러놨던 것들이, 맥주랄지 라면이랄지 많이 좀 오른 부분도 있다”며 ‘라면값 2000원’을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답변을 했다.
이 대통령이 말한 ‘라면값 2000원’이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한다면 김 차관이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은데도 꼼짝없이 물가를 부추긴 주범으로 몰리게 된 라면 회사들은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소비자가 많이 찾는 농심 신라면, 오뚜기 진라면, 삼양식품 삼양라면 등의 봉지면은 지금 대형마트에서 900원 안팎이면 구입할 수 있다. 약간 비싼 편의점 판매가도 1000원 정도다. 물론 2000원짜리 라면도 있지만, 고급화한 제품이거나 대용량 컵라면으로 일반 라면과는 구분된다. 소비자 선호의 다양성을 고려한 제품 및 가격 정책을 뭐라 해선 안 된다.
지난달 기준으로 라면 등 가공식품 74개 품목 중 53개 품목의 소비자물가지수가 비상계엄 선포 전인 지난해 11월보다 상승했다는 게 통계청 발표다. 커피 초콜릿 식초 젓갈 빵 햄 등 19개 품목은 반년 사이 5% 넘게 올랐다. 민생 안정을 위해 물가 관리가 중요해졌다는 얘기다. 하지만 부정확한 가격 정보를 앞세워 과잉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주재 첫 물가회의에서 나온 실무진의 충실하지 못한 설명과 시장 분석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