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내재화하는데…뒷짐만 진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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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中은 정부 주도로 반도체 내재화하는데…뒷짐만 진 한국

“새로 생긴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를 스무 개까지 세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

지난 3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반도체 박람회 ‘세미콘 차이나 2025’ 현장을 찾은 한국 반도체 회사 최고경영자(CEO)의 이야기다. 그는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 중 절반 이상이 작년까지 본 적도 없는 신생 기업”이라며 “이미 한국의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업 창업은 대가 끊겼는데 중국은 이제 시작이란 걸 확실히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느낌은 숫자로도 증명된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중국 반도체 장비의 내재화율은 2020년 5%에서 올해 21%로 5년 만에 네 배 이상으로 높아졌다. 중국이 미국의 수출 통제에 맞서 ‘반도체 자립’을 실천하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변신 중인 화웨이가 선봉에 섰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 지원을 받아 여러 반도체 자회사를 설립했다. 화웨이 출신들이 반도체 회사 창업과 분사에도 앞장서고 있다. 올해 세미콘 차이나에서 반도체 장비 30여 종을 선보인 5년 차 스타트업 ‘사이캐리어’가 대표적이다.

숨 가쁘게 움직이는 중국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한가한 모습이다. 이재명 정부가 반도체산업 육성을 1호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위기 진단부터 해법까지 업계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반도체특별법 제정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연구개발(R&D) 경쟁력을 갉아먹는 장애물로 꼽히는 주 52시간 근무제의 예외를 인정하자는 목소리엔 귀를 닫고 있다. 경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K팹리스밸리’, 글로벌 소부장 클러스터,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5만 개 이상이 들어간 인공지능(AI) 데이터 클러스터 조성 등을 내걸었으나 그에 상응하는 전력 공급 계획은 빠져 있다.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송배전망 대책도 보이지 않는다.

한 대학의 반도체학과 교수는 “새 정부 공약에는 우수 인재의 의대 쏠림, 청년 일자리 창출을 막는 고용 경직성 타파 등 우리 반도체산업이 무너진 근본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적인 대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중국은 최고 인재들이 모여 밤을 새우며 반도체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하는데, 중국보다 자금과 인력이 모두 부족한 한국은 여전히 안일하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한국의 텃밭인 메모리반도체 산업도 5년 내 중국에 상당 부분 잠식당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키워드는 ‘실용’이다. 100조원 투자, R&D 지원 확대 등 누구나 내걸 수 있는 구호식 정책이 아니라 현장이 진정으로 원하는 실용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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