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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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영화 같은 현실, 현실 같은 영화

우리에게 ‘친절한 톰 아저씨’로 익숙한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다양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2054년의 미래 사회를 그린 공상과학(SF) 영화다. 영화 속 세상에서는 생체인식 기술이 일상화돼 거리 곳곳에 설치된 스캐너가 행인들의 홍채를 인식하고 신분 정보를 기관과 기업에 제공한다. 살인 혐의를 받는 주인공을 추적하는 데도 활용된다. 인터넷에 항시 접속된 전자종이 신문에는 주인공의 지명수배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송되며 주인공이 도주 중 들른 옷가게에선 인공지능(AI) 점원이 그의 구매 패턴 정보를 바탕으로 어울릴 만한 옷을 추천해 준다. 20여 년 전 상상한 미래다.

영화 속 AI 세상은 그야말로 상상과 공상, 때로는 망상의 세상이었다. SF영화를 과학(기술) 영화라고 칭하기보다 공상(空想)과학영화 즉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는 영화’라고 일컬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우리는 공상과학영화의 풍경이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서울 일부 구역에서 보이던 자율주행 차량은 심야·새벽시간대로 확대 운영된다고 하고 경기와 세종, 경북 경주, 제주에서도 시범 운행 중이다. 사무실에서는 AI가 수천, 수만 장의 보고서나 논문을 단 몇 장, 몇 줄로 요약하고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여기던 그림 소설 영화 음악 등 창작물도 몇 줄의 명령어, 몇 마디의 말만으로 뚝딱 만들어 낸다. 평소 내가 즐겨보고 관심 갖는 뉴스, 영상과 비슷한 소재, 스타일의 콘텐츠를 알아서 추천해 주는 건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금융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AI를 활용해 고객의 각종 결제 정보, 소비 패턴, 투자 성향 등을 분석해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 주는 초개인화가 확산하고 있으며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그랬듯 고객이 겪는 상황 등을 바탕으로 맞춤형 제안(EBM)을 하기도 한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금융 이력이 거의 없는 ‘신파일러’에게도 자금 조달의 기회를 주고, 기업 부실을 미리 감지해 은행의 건전성을 높인다. 이와 함께 기존과 다른 이상 거래 패턴을 찾고 부정 사용을 막는 등 금융 범죄로부터 금융소비자를 보호한다.

고객을 응대할 때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니즈를 분석하고 적절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은 AI은행원으로 실체화하고 있다. 통장도, 도장도, 비밀번호도 없이 고객의 얼굴 인식, 장정맥 등 생체정보만으로도 금융거래가 가능해졌다. 글로벌화에 따라 늘어난 외국인 고객은 AI 기반 통·번역 서비스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다.

5년, 10년 후엔 세상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사람을 쏙 빼닮은 휴머노이드가 우리 일상을 대신 살아주고, 우리를 대신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상상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치의 미래, 공상과학영화의 그 풍경은 어쩌면 우리 곁에서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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