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이면[이은화의 미술시간]〈387〉

6 days ago 1

달빛이 비치는 겨울 숲속, 한 쌍의 커플이 나란히 서 있다. 남자는 하얀 피에로 복장을 했고, 분홍 모자를 쓴 여자는 그의 팔짱을 끼고 있다. 분명 사육제를 즐기러 나온 듯한데, 두 사람의 표정은 텅 비었고 주변 풍경은 기묘할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

‘축제의 저녁’(1886년·사진)은 앙리 루소의 초기 대표작이다. 루소는 이 작품과 함께 그해 ‘앵데팡당전’에 처음 참가했다. 당시 그는 프랑스 파리 세관에서 근무하던 마흔두 살의 말단 공무원이었다. 정식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 원근법이 서툴렀고, 인물 표현은 인형처럼 뻣뻣하고 단순했다. 그 때문에 ‘세관원 화가’라며 놀림과 조롱을 받았다. 남들이 뭐라 하든, 루소는 이 그림으로 파리 화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7년 후, 전업 화가가 됐다. 그러니까 ‘축제의 저녁’은 루소 예술의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목과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모순에서 특별한 울림을 준다. 축제의 풍경을 그렸지만, 웃음도 환희도 즐거움도 없다. 오히려 축제의 이면, 웃음 뒤에 감춰진 고독과 불안을 보여주는 듯하다. 검은 오두막 지붕 아래 걸린 수상한 얼굴, 커플의 밝은색 옷과 대비되는 스산한 풍경은 신비하면서도 괴기스럽다. 환희와 쓸쓸함이 공존하는 이중적 세계,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뒤흔드는 상상력. 그것이 바로 루소 예술의 독창성이었다. 훗날 파블로 피카소는 그의 순수함과 독창성을 높이 사 작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1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 그림은 오늘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 같다. 우리는 끊임없이 축제 같은 이미지를 소비한다. 소셜미디어에는 반짝이는 일상과 웃음 가득한 사진이 넘치지만 그 이면에는 불안, 피로, 외로움이 자리한다. 루소의 그림은 우리에게 말한다. 축제는 고독을 잠시 가려주는 가면일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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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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