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애증의 웨스팅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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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08.21 17:29 수정2025.08.21 17:29 지면A35

[천자칼럼] 애증의 웨스팅하우스

1939년 열린 뉴욕 세계박람회에는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로봇이 출품돼 화제가 됐다. 2.1m 크기 황동빛 로봇으로 걷기와 말하기, 손가락으로 숫자 세기, 담배 피기 등 26개 동작을 할 수 있었다. 일렉트로(Elektro)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진 이 로봇의 당시 동영상은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아폴로 11호의 선장 닐 암스트롱은 1969년 7월 21일 인류 처음으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뎠다. 암스트롱이 사다리를 타고 탐사선에서 내리는 순간을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이 흑백 TV로 지켜봤다. 당시 영상 카메라는 탐사선 외부에 장착된 30프레임짜리였다.

박람회 로봇과 달 착륙 카메라는 모두 웨스팅하우스가 만든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 지난 1월 맺은 원전 지식재산권 분쟁 해소를 위한 합의문과 관련해 불공정 계약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바로 그 회사다.

1886년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설립한 전기 관련 기업이 모태로, 1999년 원자력 사업만 분사해 지금에 이르렀다. 1950년대에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는 등 미국 제조업을 이끌었다. 하지만 1980년 이후 미국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경영권도 여러 번 바뀌었다. 2006년 일본 도시바가 인수했다가 2017년 파산신청을 했고, 이후 캐나다 사모펀드인 브룩필드가 인수했다.

한국과의 첫 인연은 나쁘지 않았다. 최초의 원전인 가압경수로 고리 1호기가 웨스팅하우스 기술 지원을 받아 1977년 준공됐고 고리 2∼4호기, 한울, 한빛 원전 등에도 같은 기술이 채택됐다. 한국형 원전인 APR1400과 APR1000 역시 웨스팅하우스가 개발한 가압경수로 시스템 기반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최근 들어 원천 기술을 앞세워 원전 수출 때마다 막대한 수익 보장을 요구해 한전 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전형적인 특허괴물(patent troll) 행태라는 지적까지 받고 있다. 한수원·한전이 미국 원전 시장을 함께 공략하기 위해 웨스팅하우스와 합작사 설립을 논의한다고 한다. 비즈니스에선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만큼 이번에는 윈윈하는 방안이 나왔으면 한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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