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모래주머니 6개 달고 뛰는 韓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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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모래주머니 6개 달고 뛰는 韓 기업들

모래주머니가 ‘훈련용’일 뿐 ‘실전용’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실험으로도 증명된 팩트다. 육상선수 16명의 허리와 발목에 2~3㎏짜리 모래주머니를 채운 채 50m를 전력 질주토록 했더니, 평소보다 0.4~0.7초 늦었고(2007년 일본 쓰쿠바대 연구), 농구선수 10명의 허리에 체중의 10%에 해당하는 모래주머니를 달았더니 점프 높이가 11% 줄었다(1995년 호주 스포츠과학연구소).

부상 위험도 커진다. 발목에 대략 3~7㎏짜리 모래주머니를 달고 걸으면 무릎과 고관절 충격이 20%가량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2016년 한국체대)도 있다. 뜬금없이 모래주머니 얘기를 꺼낸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을 정부·여당만 모르는 것 같아서다. 훈련용인 모래주머니를 ‘선수’(기업)들에게 주렁주렁 채운 상태로 링에 올려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만난 한 기업인은 “지금 대한민국 기업들은 10㎏짜리 모래주머니를 6개나 단 상태로 글로벌 기업들과 싸우고 있다”고 했다. 이런 얘기다. 두 다리는 미국의 관세 폭탄과 보조금을 앞세운 중국의 진격이라는 큼지막한 모래주머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속도가 뚝 떨어졌다. 모래를 조금이라도 덜어줘야 할 정부·여당은 오히려 우리 기업들의 허리춤에 법인세 인상이라는 짐을 얹었다. 최근 4~5년간 70% 넘게 인상한 산업용 전기료도 더 올리겠다고 한다. 중심축(재무 건전성)이 흔들리니, 점프가 될 리 없다.

양쪽 어깨는 노동 규제에 짓눌려 있다. 먼저 노조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정부·여당은 각계의 반발에도 국회 통과를 밀어붙일 기세다. 하청기업 근로자가 자기네 회사를 건너뛰고 일감을 준 원청기업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해외 공장 설립 등 경영 판단도 쟁의 대상에 포함하는 법을 추진하는 이유가 “글로벌 스탠더드”여서란다. 정작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유럽연합(EU)상공회의소가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린다”며 한국 철수까지 얘기하는데도 말이다. “1년 내내 교섭만 하다 날 샐 것”이란 기업들의 절규는 이번에도 ‘대답 없는 메아리’로 끝날 분위기다.

다음 타자는 임금 삭감 없는 주 4.5일 근무제와 65세 정년 연장. 노동 생산성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더 많이 놀고, 더 오래 근무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게 기업에 어떤 부담을 줄지는 상상하는 그대로다. 어깨에 얹힌 짐(노동 규제)은 다리(추진력)와 허리(재무 건전성)에 또 다른 충격을 줄 터다.

머리 위에 얹힌 모래주머니는 상법 개정안이다. 여당은 이사 충실 의무 대상 확대, 사외이사 독립이사 전환 등이 포함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마자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 ‘더 센’ 개정안도 처리하기로 했다.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가 얼마 안 되는 지분으로 감사위원회에 입성할 수 있는 길을 우리 손으로 터준 셈이다. 글로벌 시장을 뚫는 ‘공격’에 올인해도 모자랄 판에 투기 펀드 ‘방어’에 힘을 분산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제 정부는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공멸을 막으려면 통폐합을 통해 생산량을 25% 줄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시장에서는 “석유화학을 시작으로 구조조정 산업이 줄줄이 나올 것”이란 말이 나돈다. 어느 산업 하나 온전한 데가 없어서다. 구조조정은 필연적으로 실직과 지역경제 붕괴를 부른다.

위기의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다른 묘수가 있을 리 없다. 송승헌 맥킨지 한국오피스 대표의 진단대로 잃어버린 기업가정신을 되살리는 수밖에. 그 출발점은 ‘바위(big rock) 규제’를 풀어 기업의 몸과 머리를 가볍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만 모래주머니를 매단 채 전쟁터에 내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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