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아버지의 1주기였다. 원래 계획은 어머니, 동생들 가족과 함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거였다. 투병 중이셔서 비행기를 타기 쉽지 않으신 어머니도 큰 결심을 하셨고,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인다는 생각에 철없이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일정 직전 진료에서 어머니 건강이 악화됐다는 말을 듣게 됐다. 결국 우리 식구만 대표로 아버지를 뵙고 왔다. 건강하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불과 1년 전이었는데, 어머니마저 많이 아프시니 슬픔을 감당하기 어렵다.
아버지가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지셔서 지방의 한 응급실로 실려 가신 건 늦은 저녁이었다. 당장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도 그렇게 심각한 상황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폐암으로 보이는데, 얼마 남지 않았으니 집으로 모시고 돌아가라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에 그길로 사설 응급차를 불러 무조건 서울로 출발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뉴스에서 보던 의료대란의 피해자가 됐다. 처음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서울의 그 많은 병원은 연락하는 족족 자리가 없으니 오지 말라는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결국 어느 종합병원 응급실 앞에서 통사정하면서 기다리다가 해가 뜨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응급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응급실에 실려가고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 그래도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 있었던 건 감사한 일이었다. 인턴, 전공의가 없어 휴일도 없이 일하는 의료진의 헌신을 옆에서 보고 있자니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덕분에 너무나 소중한 40일을 함께한 뒤 아버지를 보내 드릴 수 있었다. 그때 아무런 손도 쓰지 못하고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셨더라면….
그즈음 정부는 응급실을 포함한 종합병원이 문제없이 운영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의료진이 없어 종합병원 예약이 어렵고 입원할 수 없어 한산해 보일 뿐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말인지. 정부가 사람 목숨을 담보로 정책 실험을 한 과오로 환자와 가족은 피눈물을 흘렸고 그 어떤 정치적인 실책보다 큰 실망과 분노를 남겼다.
정치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의사의 실수는 한 사람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지만, 정치인의 무능은 수많은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권력 의지가 크다고, 인기가 많다고 진짜 정치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만사를 다 아는 것처럼 이해관계를 조정하려는 준비와 노력도 없이 국민을 담보로 실험하는 일이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
9월에는 전공의들이 복귀한다고 하니, 곧 의료 현장이 정상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야 가족이 아파서 마음이 무거운 국민들이 조금이라도 걱정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상태도 기적처럼 좋아져서 미뤘던 가족여행을 갈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