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올해 초 추가 파병 이후 북한군의 전투력은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평가가 속속 나오고 있다. 첫 파병 때 습득한 전투 경험치를 토대로 드론 등을 활용한 현대전에 놀라울 정도로 숙달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군이 최대 격전지인 쿠르스크의 통제권을 상실한 데는 북한군의 반격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쌓은 실전 경험은 고스란히 대남 전략 전술에 스며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파병 대가로 러시아에서 얻은 첨단 군사기술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재래식 군사력 강화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지난달 김정은이 ‘북한판 전략핵잠수함(SSBN)’의 건조 현장과 ‘북한판 조기경보기’를 잇달아 공개한 것이 그 예고편일 수 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군의 현주소를 냉철히 짚어 봐야 할 때가 아닐까. 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우리 군은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투기의 민간 오폭과 무인기 충돌 사건 등 사건사고가 잇따르면서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더 큰 문제는 미래 안보와 우리 군의 청사진을 그려 갈 국방개혁이 사실상 ‘올 스톱’ 상황이라는 점이다. 국방부 장관 등 다수 군 지휘부가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돼 공석 또는 대행 체제가 장기화하면서 국방개혁은 추동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이래서는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 강군’을 건설하겠다는 목표는 요원할 뿐이다. 병력 급감과 북한의 핵위협 고도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동맹 청구서’ 등 켜켜이 쌓여 가는 안보 난제를 제대로 풀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경고음이 군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방위비분담금이나 국방예산의 대규모 증액을 한국이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의 감축이나 철수를 압박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 국방부가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 등을 최우선으로 하고 동맹국들이 북한, 러시아 등의 위협 억제를 주도하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한 데 이어 대북 요격 핵심 전력인 주한미군의 패트리엇 포대 일부가 최근 중동 지역에 이동 배치된 것도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일각에선 주한미군이 없는 대북 안보 시대를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하지만 작금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국방 전 분야에 걸친 대대적인 개혁 드라이브를 걸어 첨단 정예 강군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그 요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선 범정부 차원의 ‘국방 컨트롤타워’를 구성해 민관군 협력으로 4차 산업혁명의 첨단 기술을 최단 기간에 군에 접목시켜 전력화하는 데 가속도를 붙여야 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3군 사관학교 통합과 합동참모본부의 합동성 강화, 상부지휘구조 및 인사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 등을 통해 ‘싸우는 군대’로 변모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다각적인 혁신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대안을 도출하는 작업도 더 이상 미뤄선 안 될 것이다. 군 고위 관계자는 “지금이야말로 국방개혁의 마지막 ‘골든타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달 뒤 조기 대선을 거쳐 새 정부가 출범하면 ‘안보 백년지계’를 위해 정치권이 조속히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탄탄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자주적 국방 역량을 강화하고, 미래전에 대비한 정예 과학기술군을 건설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군과 안보가 정쟁에 휘둘리지 않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군이 권력의 불의에 맹종하고,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할 경우 국민과 나라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비상계엄 사태로 드러난 군의 폐습과 구태는 과감히 도려내고, 국민의 무한 신뢰와 지지를 받은 최정예 강군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하는 데 국방개혁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안보 국론을 결집시키고, 초유의 안보 위기를 돌파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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