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1400만 소액주주, 절대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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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칼럼] 1400만 소액주주, 절대선일까?

선한 행동주의 세력이 미약한 개인 소액주주와 연합해 악덕 기업에 대항하는 구도. 대다수 매체에 비친 주주환원 운동의 전형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것 같다. 주주행동주의를 이끌고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 느낀 건 그들이 ‘머니 게임’을 하고 있다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깃발을 든 행동주의 펀드들은 실제론 회사를 대상으로 한 ‘투쟁’(고)과 ‘뒷거래’(스톱) 사이의 수익률을 항상 저울질하고 있으며, 개인 소액주주연대 또한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의 과정에 따라 결성된다. 소액주주가 자발적으로 모이는 게 아니라, 특정 투자자가 특정 세력과 결탁해 ‘지지 계약’을 맺은 뒤에야 주주 모집에 나서곤 하는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는 타깃 기업과 야합을 위한 창구를 열어놓는 게 보통이고, 어떤 목소리 큰 개인 소액주주들은 볼륨을 낮추는 대가로 모종의 거래를 한다.

우리 자본시장에 도려낼 부분이 있는 건 분명 사실이다. 이에 대해 경고하는 소액주주들의 역할도 작지 않다. 그럼에도 굳이 다른 쪽 얘기를 꺼내는 건 소액주주에 대한 일종의 미화가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생각 때문이다.

[토요칼럼] 1400만 소액주주, 절대선일까?

예로 든 행동주의 펀드나 주주 대표자뿐 아니다. ‘진짜 개미’들이 모인 주식토론방에서도 ‘행동주의 펀드가 다음에 노릴 만한 종목’을 추리거나 소액주주 운동으로 급등한 종목 매도 타이밍을 묻는 일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소액주주들은 ‘자본시장을 정화하기 위해 투쟁하는 정의로운 한 집단’으로 인식된다. 수익을 좇는 소액주주들이 잘못한 건 없지만, 소액주주의 행동 기준이 수익이 아니라 정의 실현이라는 왜곡 또한 곤란하다.

사실 소액주주들은 주식투자를 한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투자 종목, 스타일, 보유 기간 등 다른 점투성이다. 한때 유행했던 개념인 ‘경제 공동체’가 아니고서야 1400만 주식투자자들이 어떻게 한 집단일 수 있겠나. 다만 예외가 있다. 이들이 ‘유권자’라는 공통점을 가질 때다. 선거를 앞두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단화된 소액주주들은, 상법 개정 같은 ‘옳은 정책’을 이끌어내는 주인공이 된다(한 행동주의 펀드 대표는 개인적인 대화에서 상법 개정안이 신념에 반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추켜세우는 것과는 다르게 소액주주들은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유상증자에 대해 종종 선험적 판단을 내린다. 2024년 1월 오리온이 리가켐바이오 지분 25.73%를 5485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소액주주들은 크게 반발했다. ‘시너지 없는 M&A’ ‘주주가치 훼손’과 같은 비판이 잇따랐고, 발표 다음날 주가는 17% 넘게 빠졌다. 현재 상황은? 글로벌 제약사와 기술이전 계약을 성사시키면서 5만원대에 머물던 리가켐바이오 주가는 10만원 안팎으로 두 배로 올랐다. 인수 발표 후 8만원대로 내려앉았던 오리온 주가 또한 현재 12만원을 훌쩍 넘겼다. 비판하는 소액주주는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만약 상법 개정이 이뤄진 상태였다면 이런 결정이 가능했을까?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소송을 제기하는 소액주주도 꽤나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사회는 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눈치를 봤을 게 분명하다. 이를 뚫고 인수를 발표했다고 해도 큰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2022년 ‘쪼개기 상장’으로 큰 비판을 받은 LG에너지솔루션도 비슷하다. 상장 때문에 기존 LG화학 주주가치가 훼손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당시 LG화학은 어떤 선택을 해야 했나. 완성차 업체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을 때였고 대규모 투자가 꼭 필요했다. 기존 주주들을 대상으로 10조원을 모았다면 달랐을까? 최근 유상증자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비춰보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LG에너지솔루션의 죄는 방산기업들처럼 주가가 오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거듭 말하듯 국내 기업과 증시 문화에 후진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소액주주가 수익을 좇듯이 대부분의 기업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쪼개기 상장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처럼, 시장의 문제점은 법령이 아니라 문화로 푸는 게 옳다. 소액주주를 위해 PBR(주가순자산비율)이나 배당성향 같은 것들을 법으로 정하겠다는 발상, 생태계의 자기조절 능력을 파괴하는 게 아닐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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