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뉴] 굴곡진 해병대 독립史, 외양보다 내실 다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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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5·16 쿠데타 선봉…한강 저지선 뚫고 도심 진격

박정희 해병대사령부 해체, 전두환 때도 찬밥 신세

尹 이어 李도 4군체제 공약…해병대 전략전술 변화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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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하는 해병대 상륙돌격장갑차

(성남=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1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건군 76주년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해병대 상륙돌격 장갑차가 분열하고 있다. 2024.10.1
dwise@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선임기자 = 1961년 5월16일 새벽 3시20분, 육군 소장 박정희가 이끄는 쿠데타군 병력이 한강인도교(현 한강대교)에 도착해 육군 헌병대와 대치했다. 휴전선을 비워놓고 출동한 김포 해병 1여단이 반란군의 선봉에 섰다. 박정희 휘하의 해병대 지휘부는 다리 위에서 길이 막히자 사격을 가했고, 총성에 놀란 헌병들은 혼비백산해 퇴각했다. 반란군이 싱겁게 마지막 저지선을 뚫고 서울 도심으로 무혈 입성한 순간이었다.

해병대는 5·16 쿠데타 성공에 결정적 공을 세우고도 탄탄대로를 걷지 못했다. 박정희는 '10월 유신' 쿠데타 이듬해인 1973년 9월14일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해 조직을 해군 산하에 편입시켰다. 해병대의 정식 명칭은 해군해병으로 바뀌었고, 대장 계급의 사령관은 중장 계급의 해군 제2참모차장이 됐다.

해병대 해체는 북한군의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코 앞까지 침투한 1968년 1·21 사태의 반성에서 비롯됐다. 박정희는 육·해·공군·해병대의 4군 체계가 군 전력 증강에 도움이 되긴커녕 군 조직의 효율성과 합동성을 저해한다고 봤다. 하지만, 군 내부에선 해병대가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공로를 세우면서 국민적 신망과 군내 영향력이 커지자 박정희가 이를 견제하려 강수를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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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해병대 사령부 해체 행사

[해병대 사령부 제공]

해병대는 박정희 사후에도 군 내부 견제에 시달렸다. 12·12 군사쿠데타 때 한남동 해병대 공관 경비 병력이 반란군에 끝까지 저항한 것에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불만을 품고 '곁가지' 취급을 한 것이다. 육군이 쓰다 남은 것을 해병대가 받아서 고쳐 쓴다는 말이 생겨난 배경이다. 해병대에 빛이 든 것은 1987년 11월 사령부가 재창설되면서다. 2019년엔 군인사법 개정으로 해병대 장교가 다시 대장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지난 대선 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해병대 독립을 대선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조기 대선을 앞두고 여야가 4군체제 편성 등 해병대 위상 제고를 약속하고 나서 관심을 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해병대 장교가 대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된 느낌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해병대 위상 제고 방안이 군 슬림화 등 개혁 방향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해병대 전체 병력은 사단 2개와 여단 2개를 합친 약 3천명 수준으로, 육군의 1개 군단보다 규모가 작다. 해병대 사기 진작이 아무리 중요하다 해도 별 자리 더 만들어주는 식의 접근은 합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미지 확대 장갑차에서 내려 돌격하는 해병

장갑차에서 내려 돌격하는 해병

(포항=연합뉴스) 손대성 기자 = 28일 경북 포항 일대에서 열린 2025년 전반기 합동상륙훈련에서 해병대원들이 상륙돌격장갑차(KAAV)에서 뛰어내리고 있다. 2025.4.28

현대전의 흐름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에서 보듯 실전에선 드론이 탱크와 헬기를 무용지물로 만들며 재래식 무기 체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상륙기동부대인 해병대부터 생존을 위해 전략전술 변화를 강구해야 할 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권은 표에 연연하지 않고 무엇이 진정으로 군과 해병대를 위한 길인지 깊이 고민해봤으면 한다. 지금은 혈세 들여 해병대의 외양을 가꾸기보다는 곧 도래할 AI 전쟁 시대에 대비하며 내실을 다질 때다.

jah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05월28일 07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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