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년 전 도로를 달린 최초의 자동차는 기술 혁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자동차 산업은 완전히 다른 시대에 접어들었다. 차량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적 장치가 아니다. 이제는 수백만 줄의 소프트웨어(SW) 코드, 수십 개의 센서, 고성능 마이크로칩을 통합한 정교한 스마트 기기로 진화했다. 이로 인해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공급망과 기술 전략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완성차 제조업체(OEM)들은 공급업체 주도의 모델에서 벗어나 자사의 기술 로드맵과 시스템 아키텍처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반도체 회사들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시스템 요구 사항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정보기술(IT)과 반도체 기술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차량의 경쟁력은 점점 더 칩 기술의 발전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하드웨어와 SW의 원활한 통합은 이제 필수적이며, 반도체 설계 능력은 핵심 전략 자산이 됐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역사적으로 OEM들은 엔진, 브레이크, 좌석 등 부품을 개발하기 위해 1차 공급업체(티어1)와 협력하며, 이를 위해 넓은 범위의 하청업체 네트워크가 지원됐다. 이 모델은 수십 년간 전문화와 비용 최적화를 지원했지만,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의 시대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게 됐다. 센서, 알고리즘, 인공지능(AI) 기반 컴퓨팅이 중심이 되면서 리더십은 전통적인 부품 공급업체에서 반도체 및 전자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기차로의 전환, 자율 주행 기술의 가속화, 그리고 증가하는 연구개발 비용은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다. 이제 스마트 차량을 제작할 수 있는 기업은 한정적이다. 그 결과, OEM들은 수직 통합 모델을 넘어 반도체 제조업체와의 보다 수평적인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동시에 반도체 회사들은 자동차 산업의 요구 사항을 더 잘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한 공동 개발 노력을 심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떠오르는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칩렛' 기술이다. 칩렛은 특정 기능을 수행하도록 설계된 모듈형 반도체 유닛이다. 이를 마치 블록처럼 조합해 고성능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다. 전통적인 단일 칩에 비해 칩렛은 더 큰 유연성과 확장성을 제공하며, 더 빠르고 비용 효율적인 설계와 업그레이드를 가능하게 한다. 예를 들어 AI 기반 보행자 탐지, 통신, 제어, 비디오 처리 등에 최적화된 칩렛을 조합해 차량의 고유한 성능 요구 사항을 충족할 수 있다.
칩렛은 전력 효율성과 공간 효율성 측면에서도 장점을 제공한다. 복잡한 배선, 냉각 및 기타 지원 부품의 필요성을 줄여 시스템 아키텍처를 단순화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주요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은 자동차 칩렛 솔루션을 개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국제 표준화 및 협력 노력도 확장하고 있다. 일본의 ASRA, 미국 기반의 오픈 칩렛 플랫폼, 중국의 독자적인 표준화 노력 등이 이러한 글로벌 변화의 중심에 있다. 국가들은 칩렛 플랫폼을 미래 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기술 주권을 확보하고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전략적 방향을 설정해야 할까? 한국은 이미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에서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것은 바로 칩렛 기술의 부상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은 단순히 외부 혁신을 채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반도체 회사들과의 공동 연구개발을 선도하고, 글로벌 표준 설정에 기여하며, 국제 연합에 참여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오토모티브 칩렛 얼라이언스'와 같은 이니셔티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자동차 제조업체와 국제 반도체 기업 간의 협력 강화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혁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 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전략적 비전과 실행력이 중요하다. 정부, 산업, 학계가 협력해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무대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공동 연구와 혁신에 투자하며, 새로운 기술 표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글로벌 모빌리티의 다음 시대를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다.
바르트 플랙클 아이멕(Imec) 오토모티브 부사장 Bart.Plackle@imec.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