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유재동]‘한국의 다음 산업혁명’, 그 설레는 상상

2 days ago 1

유재동 산업1부장

유재동 산업1부장
‘Korea’s Next Industrial Revolution.’ 젠슨 황의 엔비디아가 최근 제작해 공개한 한국 헌정 영상의 제목이다. 제조업 붕괴 위기에 일자리는 줄어들고, 인재까지 떠나가며 현상 유지도 어려운 판국에 느닷없이 산업혁명이라니. 이런 국뽕급 희망 회로를 자극한 게 다른 누구도 아닌 외국 기업이란 점은 더더욱 놀라웠다. 외부의 시선은 가끔은 잊고 지내던 우리의 숨은 저력을 재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치킨과 소맥, PC방, K팝…. 1박 2일 동안 젠슨 황이 쏟아낸 감탄사들은 우리가 마치 공기처럼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을 향해 있었다.

AI가 선물한 ‘제조업 르네상스’의 기회

젠슨 황은 우리 산업의 르네상스를 예견하며 나름의 근거를 제시했다. 그는 “미국은 소프트웨어에 강점이 있지만 제조업이 약하고 유럽은 반대로 제조업이 강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약한데, 한국은 두 역량을 두루 갖췄다”고 했다. 폭넓은 제조업 포트폴리오, 꽤 경쟁력 있는 정보기술(IT) 인프라, 거기에 K드라마, K뷰티 등 소프트파워 역량이 받쳐주는 한국은 AI 기술이 산업 곳곳에 스며들어 경제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젠슨 황이 말한 한국의 강점은 단순히 반도체 공정 기술이나 BTS의 글로벌 팬덤 같은 이미 드러난 성취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본 것은 우리 산업의 ‘현재’가 아니라 ‘잠재력’이었다. “한국이 AI 리더가 될 가능성이 무한대”라는 평가도 한국이 그간 써 내려간 경제 기적의 역사를 봐왔기 때문에 나왔을 것이다.

‘한국의 산업혁명’이라는 그의 비전이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오르는 것은 AI가 이 지긋지긋한 저성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적 기대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벌써 30년 넘게 잠재성장률과 출산율이 급강하하는 중이다. 특히 태어난 이후 한 번도 고도성장의 경험을 하지 못한 MZ 이후 세대들에겐 경기침체와 취업난은 인생에서 변치 않는 상수(常數)가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젠슨 황이 한국의 제조 현장을 혁신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하자고 먼저 손을 내민 것은 우리로선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다. 전 세계 AI 확산이라는 야심을 가진 엔비디아는 한국과의 ‘AI 동맹’으로 자사 제품의 판로를 열고 효용성을 입증하길 원한다. 우리에게도 AI 혁명은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성장의 물줄기를 틀어 수압을 높이고, 세대의 서사를 바꿀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나는 젠슨 황의 비전이 허황되다고 보지 않는 만큼, 혁명에 준하는 산업 대전환이 그래픽처리장치(GPU)만 들여온다고 저절로 이뤄질 거라고도 보지 않는다. 제아무리 성능이 우수한 AI 칩이 있어도 그것을 연결하고 활용할 사람과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 제조업의 낡은 체질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실패를 용인하는 조직 문화와 기업가 정신의 부활, 혁신을 지원·장려하는 거버넌스, 대·중소기업 및 스타트업이 모두 참여하는 개방형 생태계가 어우러져야 한다. 특히 정치권은 AI 투자와 육성만큼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우선적으로 챙기길 바란다. 결국 우리가 본래 갖고 있는 장점 빼고는 모두 다 바꿔야 한다. 기술이나 자원의 도입보다 더 어려운 일은 그것이 작동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거저 오지는 않을 것

물론 혁신의 씨앗이 오랫동안 말라버린 우리 사회에서 그 모든 변화와 준비 과정이 단번에 이뤄지리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번 기회를 계기로 실험적인 아이디어가 살아 숨 쉬고 혁신 기업이 태동해 신산업을 이끄는 생동감 넘치는 경제 환경이 우리 청년들에게 다시 찾아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비록 아직은 기적과 같은 일이겠지만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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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산업1부장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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