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금융계 고위 인사가 걱정스레 말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그날’은 4월 2일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이라고 이름 붙인 상호 관세 부과 시작일이다. 불공정한 무역으로부터 미국 경제를 ‘해방’시킨다고 해서 해방의 날이다. 발표 전까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관세라 시장의 불안감은 크다.
두 번째 ‘그날’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기일이다. 어떻게 결론 날지에 따라 정국과 시장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다. 이 인사는 ‘내우외환’ 사건이 동시에 벌어져 지난해 12월처럼 원-달러 환율이 폭주하는 상황을 걱정한 것이다.
12월 트라우마 시달리는 경제계
물론 헌법재판소가 선고 기일로 ‘4월 2일’은 피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관세 폭탄이 시장에 미칠 즉각적 영향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그날이 서울 구로구청장 등 재보궐선거일이어서다. 관세 폭탄과 헌재 일정이 어떻게 비켜갈지 알 수 없으나, 경제인들이 최악의 시나리오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불확실성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경제계는 여전히 12월 트라우마에 몸서리친다. 2024년 마지막 외환시장 거래일인 12월 30일 환율은 주간 거래 기준 1472.5원에 장을 마쳤다. 연말 환율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7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2월 3일 1402.9원이던 환율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언 직후 급등을 시작해 수사 및 체포로 갈등이 고조된 30일에 기어이 1470원대로 마감했다.
뜻밖의 연말 환율에 은행도, 기업도 난리가 났다. 분기 말 환율은 주요 지표의 기준 환율이 된다. 은행 건전성을 나타내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대표적이다. 환율이 오르면 달러로 빌려준 돈 가치가 올라 BIS 비율이 떨어진다. 숫자의 변화는 실물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은행은 비율을 맞추려 신용이 낮은 기업부터 대출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 돈까지 끊긴 한계기업은 살아남기 어렵다.‘12월 트라우마’는 또다시 1분기(1∼3월) 말일과 관세 폭탄을 앞둔 요즘 재연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덕수 총리 탄핵심판 선고일인 24일에도 뛴 원-달러 환율은 25일엔 50일 만에 1470원을 터치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이 지정되지 않자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환율이 널뛴 것이다.
4월 관세전쟁 대비도 손 놨나
불확실성의 장기화 속에 우리 경제계의 1분기는 처참하게 지나가고 있다. 1분기는 글로벌 투자사들이 각국에 투자 예산을 결정하는 시기다. 적극적 투자 유치는커녕 ‘국가 신용등급을 지킨 게 어디냐’며 만족하는 데 그쳐야 했다. 3월 소비심리는 다시 떨어졌고, 4월 기업경기 전망도 하향세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4일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대화의 물꼬를 텄지만 후속 협상과 ‘팀 코리아’를 이끌 리더십은 공백 상태다.
정 회장은 미 현지 공장 준공식에서 “4월 2일 이후가 중요하다”며 민관 원팀의 관세 대응 필요성도 강조했다. 정 회장에게 ‘4월 2일’은 당연히 관세전쟁 ‘디데이’이기에 굳이 설명 없이 날짜로만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제계가 긴장하는 4월 전쟁에 국회는 관심이나 있을까. 여야는 일찍이 추가경정예산(추경)이라도 편성해 경기 대응 체제에 나서야 했다. 수출 내수 동반 부진 속 4월 관세전쟁을 우려해 왔다면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잃어버린 1분기’ 끝에 우리는 여전히 12월 속에 갇혀 있다. 어떻게든 경제를 국정 운영의 중심에 되돌려 놓고 4월을 맞아야 한다.김현수 경제부장 kim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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