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체계에 따라 상품값 달라… 환율 영향으로 격차 더 벌어져
통화가치 알 수 있는 ‘빅맥지수’
韓, 원화 하락해 미국보다 저렴
금리 인상, 정치 불안 등 영향
어느 날 한 학생이 수업 시간에 던진 말입니다. 해외직구를 해본 경험이 있는 다른 친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진짜예요. 심지어 배송비까지 붙었는데도 싸요”라고 말하더군요. 같은 맥북인데 가격이 다른 이 상황, 과연 경제학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 일물일가의 법칙
경제학에는 ‘일물일가 법칙(Law of one price)’이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같은 물건은 같은 가격’이라는 원칙이죠.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거래 비용이 없고 시장이 완전히 개방돼 있다면 동일한 상품은 어디에서나 같은 가격으로 거래돼야 한다는 원리입니다.예를 들어 미국에서 1000달러 하는 맥북을 한국에서는 1500달러에 팔고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누구나 미국에서 맥북을 사 한국에서 팔고 싶어지겠죠? 이른바 ‘되팔이’, 경제 용어로는 ‘차익거래(arbitrage)’ 유혹이 강하게 일어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사용할 목적과 용도가 없더라도 차익만을 목적으로 한 거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래가 반복되면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가격 차는 줄어들게 됩니다. 이게 바로 일물일가 원리가 마치 만유인력처럼 경제 생활에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될까요? 현실은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나라에 따라 세금 체계가 다릅니다. 부가가치세, 관세, 각종 규제 등으로 인해 같은 상품이라도 가격 차가 생기게 되죠. 운송비용, 유통 구조, 브랜드의 마케팅 전략도 차이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 모든 차이를 연결하는 핵심 고리가 바로 환율입니다.● 원화와 외국 돈의 교환비율 ‘환율’환율은 한국 돈(원)과 외국 돈(달러, 유로, 엔 등)의 교환 비율입니다. 쉽게 말해 1달러를 사기 위해 우리가 내야 하는 원화 양이죠. 예를 들어 환율이 1달러당 원화로 1300원일 때, 미국에서 1000달러 하는 맥북은 한국 돈으로 약 130만 원이 됩니다. 그런데 환율이 올라 1400원이 되면 같은 제품 원화 가격은 140만 원으로 뛰게 되죠. 그래서 환율은 단순히 숫자가 아니라 우리가 체감하는 가격에 큰 영향을 줍니다. 해외여행, 유학, 해외직구처럼 외화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는 차이가 훨씬 더 크게 다가오죠.
이쯤 되면 한국 돈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환율은 외환시장이라는 ‘돈 시장’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실질 가치와는 다르게 결정될 수 있어요. 이게 엄연한 사실이지만 이왕이면 제대로 그 가치가 평가되면 좋을 겁니다. 우리 돈의 구매력(purchasing power)이 환율에 제대로 반영됐는지 궁금합니다. 이런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 주는 지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빅맥지수(Big Mac Index)’입니다. 이 지수는 전 세계 맥도날드 ‘빅맥’ 가격을 비교해 각국 통화의 구매력을 따져보는 것인데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발표합니다.
● 각국 통화 구매력 비교 가늠자 ‘빅맥지수’
최근 발표된 올해 1월 자료를 봅시다. 한국 빅맥 가격은 5500원이고, 당시 환율인 1431.2원을 적용하면 약 3.84달러입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5.79달러였죠. 같은 햄버거인데 달러 가격으로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는 33.6%나 싸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우리 돈으로 미국에서 빅맥을 사려면 비싸게 사야 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 돈, 원화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학 원리대로라면 이 차이는 환율을 통해 어느 정도 조정돼야 합니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빅맥 가격이 같으려면 환율이 약 949.91원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 환율은 1431.2원이니 원화가 그만큼 저평가되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원화의 저평가 수준을 33.6%’로 분석했습니다. 이는 빅맥지수가 집계되기 시작한 2000년 이후 사상 최저치라고 하네요.● 일상과 깊이 연결된 경제학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 보도에 따르면 최근 강달러 흐름, 미국 금리 인상, 그리고 국내 정치 불안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정치적 요인만으로도 환율이 30원 정도는 더 올랐다”고 밝히기도 했죠. 원화 가치가 과도하게 떨어지면 수입 물가가 올라 내수 경기에 부담이 되고, 기준금리를 쉽게 내릴 수 없는 등 정책 운신의 폭도 좁아지게 됩니다.
학생들이 종종 묻습니다. “선생님, 환율이 오르면 왜 유학비가 확 오르고, 해외여행도 부담스러워지나요.” 맞는 말입니다. 유학비는 대부분 달러나 현지 통화로 부담합니다. 환율이 오르면 그만큼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하죠. 해외여행 경비도 마찬가지입니다. 항공료, 호텔비, 식사대, 쇼핑 비용…. 해외에서 쓰는 돈 대부분이 외국 화폐로 결제되니 환율이 오르면 전반적인 부담이 확 늘어납니다.
요즘처럼 환율 변동이 클 때는 해외 주식 거래 등 해외 투자도 신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 주식이 올랐다고 해도 환율이 떨어진다면 환차손(환율 손실) 때문에 실제 수익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환율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물가, 소비, 투자 결정에 영향을 주는 실감 나는 경제 신호입니다.
경제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 같지만, 이처럼 우리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같은 맥북인데 왜 미국이 더 싸지?’라는 단순한 궁금증이 환율, 구매력, 시장 원리 같은 개념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삶 속에서 경제를 배운다는 게 결코 먼 얘기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철욱 방산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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