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뒤엔 반동, 또 반동… 역사의 격랑에서 필요한 것은 몰입과 조망[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14 hours ago 1

<98> 미치지 않기 위하여
탄핵심판 결과 혼란 시작일 수… 크리스 마커 ‘붉은 대기’ 보라
각지 혁명들, 승리담과는 거리… 그러나 “늑대는 멸종되지 않아”
승리와 반동 반복되는 게 역사… 극적 결과에 도취나 좌절 말고

20세기 전 세계를 휩쓴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장대한 에세이로 평가받는 영화 ‘붉은 대기’(1977년)의 포스터.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20세기 전 세계를 휩쓴 정치적 사건에 대한 장대한 에세이로 평가받는 영화 ‘붉은 대기’(1977년)의 포스터.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이 글이 지면에 실릴 때쯤이면 탄핵심판 결과가 나와 있을까. 그 결과가 사태의 끝이 아니라 더 어려운 사태의 시작이면 어쩌나.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은, 그리고 나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무엇인가의 광신자가 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누군가 크리스 마커의 영화 ‘붉은 대기’를 권했다. 바로 지금 시네마테크에서 상영 중이라고. 정치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라고. 특히 1980년대를 거쳐 아직도 이 지구에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볼 만한 영화라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평생 비타협적 시각을 견지했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크리스 마커. 그는 자신의 사생활을 숨기기로 유명했다. 단순히 신상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정도를 넘어 자신에 대한 가짜 정보를 흘려 진짜 모습을 공들여 숨기기조차 했다. 영화계의 관심에도 불구하고 평생 단 한 번도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이런 사람은 결코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얼굴 사진을 올리지 않는다. 마커의 관심사는 세계이지 자기가 아니다.

1920년대에 태어나 21세기에 죽은 크리스 마커 같은 사람은 세계대전을, 베트남전쟁을, 반전운동을, 동유럽 민주화운동을, 미국과 소련 간 냉전을, 소련의 몰락을, 중남미의 정치 투쟁을, 공산권의 패퇴와 미국의 패권을 목격하며 살아남았다. 그리고 1980년대를 거쳐 2025년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은 세대는 베트남전을 향해 떠나는 아버지를, 박정희 대통령 유고를 알리는 호외를, 광주 민주화운동을, 재집권한 군사정권을, 직선제 투쟁을, 경제 성장을, 정치적 퇴행을 목격하며 살아남았다.

영화 속에서 피델 카스트로(위쪽 사진)는 대중 연설 중 습관적으로 마이크를 매만지고 있고, 정치행위자들은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아래 사진).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영화 속에서 피델 카스트로(위쪽 사진)는 대중 연설 중 습관적으로 마이크를 매만지고 있고, 정치행위자들은 승리를 다짐하고 있다(아래 사진). 사진 출처 IMDb 홈페이지
그 모든 과정을 겪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1987’이나 ‘서울의 봄’ 같은 승리담 영화를 찍곤 한다. 반면 대중적 성공과 거리가 멀었던 마커의 영화는 승리담과도 거리가 멀다. 영화 ‘붉은 대기’는 변혁 운동들을 몽타주 형식으로 담는다. 쿠바, 베트남, 프라하, 중국, 알제리, 일본 등을 오가며 게릴라 투쟁 중인 체 게바라, 연설 중인 피델 카스트로, 베트남을 폭격 중인 미군, 이민에 반대 중인 광신자, 시위 중인 프라하 시민, 문화적 저항에 열중하는 히피, 정치적 신념에 불타는 적군파, 개혁을 설파 중인 살바도르 아옌데, 그리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김대중 납치 사건 등을 보여준다. 다양한 사진과 뉴스 클립, 러시 필름, 포스터 등을 통해 기억의 지층을 차곡차곡 헤집는다.

쿠데타 시도를 목격한 세대는 아옌데를 잊을 수 없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민주선거를 통해 집권했던 대통령이자 3년 뒤 발발한 피노체트 국방장관의 쿠데타에 저항했던 대통령. 대학 시절 영상에서 본 아옌데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총을 들고 있었다. 비극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노체트 쿠데타로 인해, 아옌데의 장녀 베아트리츠는 쿠바로 망명했다. 연단에 올라 칠레의 정치 상황을 호소하는 장면이 ‘붉은 대기’에 나온다. 그리고 4년 후 그녀 역시 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그 이후 아옌데의 후손들은 어찌 되었나. 차녀 마리아 이사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정치인이 되었고, 손자인 곤살로 메사 아옌데는 정치학자가 되었지만 우울증에 오래도록 시달렸다.

‘붉은 대기’는 통증을 확인하는 도수치료사처럼 현대 정치사의 굴곡을 하나하나 짚고 난 뒤 늑대 사냥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개체가 많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늑대를 죽인다. 헬기를 타고 들판의 늑대들을 하나씩 저격한다. 탕, 탕, 탕. 그래도 끝내 늑대는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영화는 끝난다.

그래, 이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시간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사태의 일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현장 안에서 직접 목격하고 클로즈업하고 행동하면서 그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그 시간의 끝에 반드시 ‘승리’가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으면서. 그래야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일종의 선전영화 ‘1987’의 결말을 너무 믿으면 자칫 견디지 못할 수 있다. ‘1987’은 한때 승리의 순간이 있었으나 그 승리가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 승리 이후에 반동이 있고, 그 반동 뒤에는 다시 또 반동이 있고, 그러다가 다시 가냘픈 승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극적 승리에 도취되거나 극적 반전에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태에 접근하는 미시적 시각과 사태를 조망하는 거시적 시각이 모두 필요하다. ‘붉은 대기’는 그러한 미시적 시각과 거시적 시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몽타주를 구성하는 조각조각난 장면들은 관객을 사태의 한복판으로 데려간다. 체 게바라의 시체 앞으로, 베트콩 사냥을 자랑하는 군인 뒤로,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는 베아트리츠 옆으로 데려간다. 그 장면들 속에서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될 즈음에 마커는 관객을 다시 끌어내 또 다른 역사적 순간으로 데려간다. 그런 식으로 3시간의 긴 여정이 끝나면 관객은 몰입과 함께 전망을 얻게 된다. 그리고 나직한 보고를 받게 된다. “학살에도 늑대는 멸종되지 않았습니다.” 제정신을 유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마커의 ‘붉은 대기’를 권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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