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 후에도 인턴과 계약직을 전전하며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한국 구직자에게 일본은 꿈의 나라다. 지난해 4월 기준 일본 대졸자 취업률은 98.1%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다. 정규직 일자리를 마음만 먹으면 구할 수 있는, 확고한 구직자 우위 시장이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 일본 기업은 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입도선매한다. 올봄에 졸업한 일본 대학생 가운데 재학 중 취업을 확정한 사례가 84.3%다. 전화, 편지 등을 통해 기업이 부모에게 자녀의 입사를 허락받는 ‘오야카쿠(親確認)’ 제도도 일반화돼 있다. 부모를 설득하면 여러 기업에 합격해 어디로 갈지 고민하는 구직자를 직원으로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는 것이다.
청년들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구인난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만성화한 인력 부족이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다. 지난해 인력 부족을 이유로 파산한 일본 기업이 342곳이다. 2023년 260곳을 넘어선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특히 많은 일손이 필요한 건설과 물류 업종에서 파산 사례가 많이 나왔다. 대기업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경쟁이 느슨하다 보니 직원들의 생산성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푸념이 쏟아진다.
저출생·고령화 구조가 일본과 흡사한 한국도 이런 날이 머지않았다. 15~64세 인구는 이미 감소세로 전환했다. 2023년 3596만 명에 달한 생산가능 인구가 2028년 3419만 명, 2033년 3235만 명으로 줄어든다. 매년 30만~40만 명의 일손이 사라지고 있으니, 구직난이 구인난으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노동력 부족이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줄을 잇고 있다. 2030년대 1.0% 선을 유지하는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 0.7%, 2050년대 0.2%로 내려가고 그 후엔 ‘마이너스’로 추락하는 것이 최악의 시나리오다.
지금까지 정부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에 보조금을 주는 데 집중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투입된 정부의 저출생 예산이 300조원에 육박한다. 결과는 모두가 아는 대로다.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0.75명. 그나마 전년보다 소폭 개선된 게 이 수준이다. 이젠 어쩔 수 없다. 정부도 기업도 ‘노동력 절벽’을 상수로 보고 중장기 성장 전략을 짜야 한다. 젊은 인력의 대체재는 지금까지는 노동시장 밖에 있던 은퇴자와 외국인, 인공지능(AI) 정도다. ‘비자 장벽’을 낮춰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을 늘리고, 은퇴 후 계속 고용을 제도화하며, 사람이 하던 일을 AI에 맡기는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는 데 성공하면 일자리 공백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이 몸담은 분야에 외국인이나 은퇴자, AI가 들어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내가 일하는 동안은 경쟁자의 진입을 허락할 수 없다는 님토(NIMTO·Not In My Term of Office) 현상이 노동시장 개편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의료 인력을 줄일 수 있는 원격진료가 의사와 약사의 반대에 부딪혀 37년째 시범사업만 되풀이하는 게 단적인 예다. 그나마 논의의 물꼬가 트인 계속 고용도 경제계와 노동계, 젊은 층과 중장년층의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노동력 절벽과 관련한 논란을 피해 가고 있다. 저출생·고령화 공약도 표에 도움이 되는 보조금 살포 계획뿐이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특정 집단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속내다. 하지만 이래선 미래가 없다. 새로 꾸려질 정부는 대체 노동력 확보와 관련한 논의를 시작하고,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작업에 조속히 돌입해야 한다. 노동력 절벽이 한국을 덮칠 시간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