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싸움’이라 불리는 언어를 통한 논리력 겨루기에는 늘 자신 있는 필자다. 하지만 필자도 단 한 번 이겨보지 못한 상대가 있는데 바로 필자의 아내다.
우리 부부는 캠퍼스 커플로 시작한 인연이기에, 두 사람 다 비슷한 교육을 받은 탓도 있겠지만 애초에 정치인은 배우자에게 항상 ‘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를 아는 지인들은 “네가 정치를 할 수 있는 건 부인이 연상인 덕분”이라며 장난을 던지곤 한다. 정치인의 부인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된 아내가 이를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필자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온 넓은 아량과 지혜 덕분임을 필자도 백번 공감한다.
정치인의 배우자로 산다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다. 본인의 선택이라고는 이 사람을 배우자로 맞이하겠다는 결심뿐이었는데, 그 배우자를 통해 스며드는 삶이 참 험난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등 정치활동과 맞닿아 있는 법률은 후보자뿐 아니라 후보자의 배우자에게도 여러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또 부정청탁금지법에서는 공직자가 해서는 안 될 행위 중 상당수를 배우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법률상의 책무뿐이겠나. 공직에 나선다는 점 때문에 재산 상황은 물론 각종 사생활이 대중에게 노출된다. 프랑스 같은 해외 일부 국가에서는 공직자, 가족과 관련한 내용이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덜 노출되지만, 우리나라는 공직자와 가족의 도덕성을 매우 중요한 자질 중 하나로 여긴다. 특히 선출직 공무원은 대중에게 노출되는 사생활의 정도가 크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 이런 점 때문에 표창원 전 국회의원이 ‘공직자의 삶은 교도소 담벼락 위를 걷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필자는 스스로 판단이 빠른 사람이라고 자부하지만 어려운 결정에 앞서서는 아내의 조언을 구하려고 한다. 그래야 삶이 평온해서가 아니라, 아내의 판단 속에는 필자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백하자면, 지금껏 내린 몇몇 어려운 정치적 결단의 순간 앞에서 아내에게 사전 고지하거나 협의하는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묻는다면 필자는 수줍게 미소 지으며 이 칼럼의 제목을 가리킬 수밖에 없다.
장발 법대생의 마음을 뺏어버린 예쁜 웃음의 그는 이젠 누가 봐도 필자랑 너무 닮은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의 어머니가 돼 지금까지도 필자의 허점을 채워주고 있다. 배우자는 인생의 거울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거울 속에 비친 필자의 삶은 꽤 괜찮은 삶이다. 아름다운 아내를 낳아 하염없이 지혜로운 여인으로 길러주신, 며칠 전 작고하신 필자의 장인어른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여기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