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시선] 모독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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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의 시선] 모독의 목적

5월 8일은 어버이날이자 1886년 코카콜라가 최초로 판매된 날이다. 5월 5일이 어린이날이자 카를 마르크스 생일인 것처럼. 코카콜라병의 클래식 버전은 1915년부터 생산됐다. 386세대에 코카콜라병은 1980년 보츠와나, 남아프리카공화국 합작 영화 ‘부시맨’을 연상시킨다. 원제는 ‘The God Must Be Crazy(신이 미친 게 맞다)’인데 20세기폭스가 배급했다. 제작비 500만달러 영화가 미국 내 5120만달러, 해외 6000만달러 수익으로 손익분기점 계산상 대박을 쳤다. 한국에서는 1983년 11월 서울 종로 피카디리 극장에서 개봉해 거의 30만 관객이 들었고 동시 상영관, 지방 극장, TV 더빙 방영, 비디오테이프, 그 외 매체들에서의 열기까지 더해져 그 시대의 한 페이지가 됐다.

실제 부시맨(코이산족, 더 정확히는 산족이다.) 니카우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칼라하리 사막 상공에서 경비행기 조종사가 버린 빈 코카콜라병이 부시맨족 마을에 떨어지자 그것을 부시맨들은 신이 분실한 물건이라고 여긴다. 문제는 이 코카콜라병의 유용함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다는 것. 주인공 자이는 코카콜라병을 신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와중에 부시맨 자이의 ‘순수함’은 문명인들의 ‘어두움’과 맞부딪히면서 소동과 웃음을 폭발시킨다. 코카콜라병을 무심코 보다가 떠올리게 된 ‘부시맨’의 추억은 내게 그 이면의 상념(想念)을 갖게 한다.

예나 지금이나 분야와 장르(심지어 다큐멘터리, 학문 등‘마저’ 포함), 수준과 규모를 막론하고 어떤 형태로든 착하고 지혜로운 원시적 인간과 어리석고 나쁜 문명인이 대비되는 콘텐츠들이 호황이다.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란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인을 도덕적이고 조화로운 존재로 이상화하는 시각이다. 문명인은 사악하며 파괴하는 존재다. 여기서 문명이란 서구 ‘근대 문명’이다. 이런 패러다임(paradigm)은 유서가 깊고 전략적으로 구성돼왔다. 제 자식 다섯을 고아원에 내버린 주제에 교육서 <에밀>을 썼으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던 장 자크 루소를 벤치마킹한 마르크스의 최대 맹점(盲點)은 자유시장 경제에 대한 반의도적(半意圖的) 몰이해 이전에 원시 공산 사회(이 자체가 거짓말이다)에 대한 ‘에덴동산적 환상’에 있다. 마르크시즘이 경제학이 아니라 사이비 개신교(改新敎)인 이유다. 1960년대부터는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유럽에서, 그런 유럽 지식인들이 건너가 있는 미국에서, 서양 근대의 상식과 과학성을 저주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학문과 예술, 기본 교육기관과 대학 등으로 전염병처럼 퍼져갔다. 인류학자 나폴리언 섀그넌은 아마존 야노마미족과 35년간 지내며 연구한 결과 루소 추종자들이 기정사실화하는 고결한 야만인의 허상과 레비스트로스류의 인류학의 ‘지나친’ 문화상대주의적 몽매(蒙昧)를 폭로한다.

인간에게 원시적 세상은 굶주림과 질병과 폭력이 창궐했다. 영아 사망률은 극히 높고 평균 수명은 극히 짧았다. 근대를 악마화하는 지식인들께서는 정작 아마존 마을은커녕 북한에서조차 단 며칠도 못 견딘다. 근대와 현대 문명은 인류에게 이전의 그 어떤 시대에도 불가능했던 수많은 혜택과 권리를 주었다. 그것들을 부정하며 거짓된 비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바퀴벌레가 나온다고 아파트에 불을 지르는 짓이다. 인류사 어느 시대나 나름의 문제는 있었다. 철학이 현실의 반성 기재이긴 하되 근대 문명을 이토록 모욕하는 것은 거짓에 종사하는 짓이다. 이 ‘모독의 목적’은 진보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돼 유행되고 문화로 자리 잡아 법보다도 살벌한 도그마(dogma)가 된다. 대중은 그것을 올바름으로 추앙하며 ‘자뻑 정의감’에 차오르고 그 반대편은 죄악시된다.

동조화된 집단에 팩트는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가장 상대적인 것을 주장하던 자들이 가장 지독한 파시스트가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그 위선은 독점 사업화돼 지도부와 단체의 수익 생태계를 조성한다. 그리고 정치도 그런 식으로 굴러간다. 한국이 산림국이 된 건 산업이 발전해 나무를 베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역설의 당연함’을 깨달아야 ‘천동설 인간’을 탈출한다. 인간이 문제지 신은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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