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론 뮤익 전시에 日관광객 몰린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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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론 뮤익 전시에 日관광객 몰린 이유

지난달 11일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론 뮤익 개인전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하루 평균 5000명이 다녀가며 누적 관람객이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호주 출신의 극사실주의 조각가 뮤익은 살아 숨 쉬는 듯한 인형을 통해 삶과 죽음을 성찰한 작품 세계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점은 전시장을 거닐다보면 일본어가 한국어만큼 많이 들린다는 것이다. 삼삼오오 모인 젊은 여성부터 아이 손을 이끌고 찾은 부부까지 어렵지 않게 일본인 관광객을 마주치게 된다.

수많은 관광객이 서울의 대표 미술관을 찾아 전시회를 볼 정도로 국내 미술 시장이 커졌다는 뿌듯함도 잠시. 한 미술계 인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 같은 현상이 좋아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줬다. 그는 “내년 일본 모리미술관에서도 론 뮤익 개인전이 열린다”며 “일본 미술관 표 값이 한국 미술관에 비해 네 배 정도 비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전시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싼 국내 전시 관람료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반 성인 표 가격은 5000원이다. 모리미술관은 2000~2500엔(1만9000~2만4000원)이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입장료는 22유로(약 3만5000원),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은 30달러(약 4만2000원)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모리미술관보다 4분의 1 값을 받고도 똑같은 전시를 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다. 협상력이 좋아 낮은 대여료로 뮤익 작품을 빌려왔을 가능성이 첫 번째다. 큰 적자를 감수하고도 낮은 가격에 표를 파는 것이 두 번째다.

이번 전시회의 손익계산서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가설이 맞는지 알 수 없다. 그동안 국내 미술관의 운영 행태를 감안하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2023년 기준 국립현대미술관 네 곳(서울·과천·덕수궁·청주관) 운영에 들어간 돈은 총 642억원이었는데, 입장료 수입은 12억원이었다. 다른 국립 미술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들이 엄청난 적자에도 선심 쓰듯 싼값에 전시를 계속할 수 있는 건 국민이 낸 세금 덕분이다. 문턱을 낮춰 더 많은 국민이 예술을 향유하기 위해서라지만 론 뮤익 개인전 사례에서 보듯 혜택은 엉뚱한 곳에 돌아갈 수 있다.

좋은 관람 기회 오히려 박탈

외국인 관광객이 우리가 낸 세금으로 혜택을 보는 건 부차적 문제일 수 있다. 더 심각한 건 국립 미술관의 저가 정책이 미술 시장 가격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사립 미술관은 덩치 큰 국립 미술관과 경쟁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표 값을 낮출 수밖에 없다.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 등 일부 대형 미술관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립 미술관의 입장료는 5000원에 맞춰져 있다. 이는 미술 전시라는 상품의 가치를 떨어뜨려 앞으로도 티켓 가격을 올리기 힘든 구조를 만든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미술관이 소장품을 늘리지 못하면 예술가에게도 직접적 타격이 간다.

저가 정책은 좋은 전시를 제공할 기회도 줄어들게 만든다. 돈을 더 내더라도 유명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입장료가 낮은 국내에선 이런 전시를 가뭄에 콩 나듯 만나볼 수밖에 없다. 일반 관람객에겐 제값을 받고 사회적 약자에게만 선별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을 고민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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