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나면 수십, 수백 년 자리를 지켜온 나무 수십만 그루가 송두리째 사라집니다. 큰 산불이 나면 누구도 손쓸 도리가 없습니다.”
1976년 대한민국 최초의 나무병원을 세워 올해로 50년째 나무를 살리는 데 한평생을 바쳐온 강전유 나무종합병원 원장(88·사진)은 지난 28일 최근 경북지역을 강타한 대규모 산불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강 원장은 급격한 환경 변화가 산불과 폭설 등을 부르고 나무를 건강하게 키우기 힘든 여건이 됐다고 했다.
소나무가 많은 우리 산의 특성상 산불이 더 번지기 쉬운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강 원장은 “소나무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지만, 송진에 불이 붙으면 잘 꺼지지 않는 성질이 있다”며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예전만큼 강한 수종이 아니게 된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수십 년간 현장을 누비며 수많은 나무를 살려낸 경험 덕에 살릴 수 있는 나무와 그렇지 않은 나무를 구분해내고, 적절한 처방을 내린다. 충북 보은군 정이품송, 경기 양평군 용문사 은행나무 등 수많은 나무가 강 원장의 손길을 거쳐 건강을 되찾았다.
강 원장은 서울대 농과대(현 농생명공학부)를 졸업한 뒤 임업연구원(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14년을 근무했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길을 걷던 그는 1976년 돌연 사직서를 내고 나무병원을 열었다. 당시만 해도 나무병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강 원장은 “임업연구원에 있을 때 나무를 치료할 방법을 알려달라는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공무원 신분으로는 개인의 의뢰를 받을 수 없으니 사회에 나가 나무를 진료하는 병원을 만들어야겠다 싶었다”고 했다.
리어카에 약을 싣고 다니며 시작한 그의 병원은 현재 전국 600명 이상인 나무 의사 제도를 만들어낸 모태가 됐다. 신문사에 병충해 칼럼을 기고하며 존재를 알리고, 부잣집 담벼락에 ‘댁의 나무는 건강하십니까?’라고 적힌 전단을 붙이며 대한민국 1호 나무병원의 길을 개척해갔다. 강 원장은 1978년 경북 경주의 천연기념물 ‘조각자나무’를 치료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국가유산청이 지정하는 천연기념물과 산림청 소속 보호수의 주치의 역할을 해왔다. 일평생 노고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국가 유산 보호 유공자로 선정돼 훈장을 받았다.
강 원장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나무 치료 기록을 정리하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쓸 예정이다. 치료해온 나무들을 세세하게 기록한 ‘나무치료역사기록’ 1권과 2권을 최근 출간했다. 현재 3권을 펴내기 위해 작업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나무 의사 후배들이 현장에서 나가 더 많은 실무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소현/사진=최혁 기자 alp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