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도심 재개발과 현대식 건축물, 문화유산 가치 오히려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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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1.06 17:33 수정2025.11.06 17:33 지면A35

대법원이 어제 서울시의회가 문화유산 인근 지역의 개발이 가능하도록 조례를 개정한 것이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놨다. 서울시의회는 2023년 문화재 보호 조례 중 ‘문화재 특성과 입지 여건으로 건설공사가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면 인허가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조항(제19조 제5항)을 삭제했다.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은 이 조치에 강하게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판결로 2004년 결정 이후 20년 넘게 답보한 서울 종묘 인근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낙후한 세운상가 자리에 공원을 만들고 그 주위에 25~35층 높이의 고층빌딩을 올리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다. 국가유산청은 사업이 진행되면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재개발을 반대해 왔다. 서울시는 재개발을 제한하는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을 문화재 외곽 경계로부터 100m 이내로 규정하고 있다. 이 지역 내에선 문화재를 가릴 수 있는 고층빌딩 건축이 엄격히 규제된다. 세운4구역은 종묘와 180m 떨어져 보존지역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문화재 훼손 논란으로 도심 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은 건 세운4구역만이 아니다. 2021년엔 세계유산에 등재된 김포 장릉(章陵)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검단신도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논란이 일었다. 공사 중단과 소송전으로 치달았던 ‘왕릉 뷰 아파트’ 사건은 건설사들의 승소로 끝났다. 당시 법원은 아파트와 장릉의 거리가 450m에 달해 문화재 훼손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했다.

문화유산 보존은 중요한 국가 과제다. 그렇다고 문화유산과 수백m 떨어진 지역의 재개발까지 막는 것은 기계적이고, 교조적인 접근이다. 재개발의 때를 놓쳐 인근 지역이 슬럼화하면 문화유산의 가치가 뚝 떨어진다. 한국을 찾은 외국 관광객에게 슬럼가 방문을 권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른 나라들도 문화유산 인근 지역 재개발에 적극적이다. 근대 대표 건축물인 도쿄역 바로 뒤편에 초고층 빌딩을 허용한 일본이 대표적이다. 도심 재개발이 문화유산 훼손을 야기한다는 건 고정관념일 뿐이다. 현대식 건축물과 문화유산의 공존을 고민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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