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동 칼럼] 외환보유액 이대로 충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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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 칼럼] 외환보유액 이대로 충분한가

한국 정부가 미국에 현금으로 투자해야 하는 2000억달러의 대부분을 외환보유액에서 충당하기로 한 것은 차선책이다. 한·미 통화스와프를 통해 미국 달러를 마련하는 것이 부담을 최소화하는 최선의 방안이지만 미국의 거부로 무산됐다. 외환시장과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외환시장 바깥에 있는 외환보유액 운용수익을 대미 투자금의 기본 재원으로 삼겠다는 것은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지난달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88억달러로 88%가 미국 국채 등 유가증권에 투자돼 있다. 연간 이자 수입 등으로 올리는 수익은 150억달러 안팎이다. 외환보유액 전체를 기준으로 하면 연 수익률이 3.5% 정도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이 150억달러를 전부 미국에 송금할 방침이다. 만약 미국이 연간 최대인 200억달러를 요구하면 부족분 50억달러는 달러표시 국채를 발행해 보낸다는 계획이다.

이왕 외환보유액을 활용하기로 했다면 외환보유액을 조금 빠른 속도로 늘려 1년 수익으로 1년 대미 투자액 전체를 감당하는 방안은 어떤가. 예를 들어 외환보유액을 6000억달러로 늘리고 연 3.5%의 수익률이 유지된다면 연간 210억달러의 운용수익이 생긴다. 대미 투자금 전체를 마련하고도 남는다. 매년 달러표시 국채를 발행한다고 요란을 떨지 않아도 된다.

물론 외환보유액을 단기간에 늘리는 것이 쉽지 않고 부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외환당국이 시장에서 달러를 사는 것과 달러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전자는 환율과 물가를 고려해야 하고, 후자는 이자 부담을 감안해야 한다. 둘 다 어렵지만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외환보유액을 빠르게 늘려왔다는 것을 되새기면 지금이라고 못할 것도 없다. 특히 요즘은 경상흑자가 이어지고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물이 인기가 있어 외환보유액을 늘리는 데 불리한 환경도 아니다.

외환보유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강압과 무관하게 적정 수준보다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4000억달러를 조금 넘는 규모는 ‘대외 지급에 대비해 정부와 중앙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 높은 외화 자산’으로 모자란다는 얘기다. 경제학계 일각에선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봤을 때 지금보다 1000억~3000억달러 더 쌓아야 한다고 진단한다. IMF와 BIS는 1년 이하 단기 외채, 수출과 수입액, 외국인 증권 투자 등을 고려해 적정 외환보유액을 산정한다. 지난해 말 IMF 기준으론 5200억달러, BIS 기준으론 7000억달러가 적정 수준이라고 한다.

일본 대만 등 이웃 국가들과 비교해도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작은 편이다. 9월 말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3413억달러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30% 수준이고, 대만은 6029억달러로 GDP의 70%를 웃돈다. 반면 한국은 GDP의 22% 수준에 그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제까지 경제 규모 등을 감안했을 때 4000억달러 초반대의 외환보유액이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1년 운용 수익 150억달러를 전부 미국에 보내야 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환율 급변동에 대응할 여력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은은 2021년 이후 이제껏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연평균 200억달러 이상을 썼다.

한은이 150억달러를 미국에 보내고 외환보유액을 지키고자 한다면 시장 안정 역할을 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배경엔 이 같은 관측도 있다. 외환보유액은 2018년 4000억달러를 넘은 뒤 제자리걸음이다. 이제 경제 환경이 바뀌었으니 외환보유액이 적정한지 다시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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