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고령화 시대에는 배려와 인내심이 더욱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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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버스에 타 자리 잡고 앉기까지 관찰
기다려준 기사, 시간 걸려 초조한 동행자
韓 75세 이상 8%, 15년 내 17% 돌파할 듯
세대 간 이해-양보가 미래 삶 지탱할 핵심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올해 9월 경기도에서 마을버스를 탄 적이 있다. 어느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탑승했는데, 동행하는 중년 남성이 있었다. 아마 아들이 아니었을까 싶다. 할머니는 보행에 큰 불편은 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노인이었다. 그 남성은 할머니를 조심스레 부축하고 있었다. 한적한 오후라 승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좌석은 거의 다 차 있었다. 나는 앉기 귀찮아 그냥 서 있었는데, 여든 가까이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달리는 버스에서 서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탄 버스에는 노약자석이 모두 앞쪽에 배치돼 있었다. 대부분이 1인석이었고, 2인석도 몇 개 있었다. 한 2인석의 창가 자리가 비어 있었고, 중년 남성이 할머니를 그쪽으로 인도했다. 할머니는 통로 쪽에 앉아 있던 여성에게 창가 좌석으로 옮겨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성은 창가 좌석은 노약자석이라 자기는 거기 앉을 수 없다고 했다. 대신 할머니가 창가 자리로 들어갈 수 있도록 몸을 살짝 틀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할머니의 동행자인 남성은 여성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자 버스가 그제야 출발했다. 남성은 기사에게도 “기사님,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마음씨 좋은 기사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렸던 것 같다.

몇 정거장을 지난 뒤 할머니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자리의 여성은 다시 몸을 틀어 공간을 내주었고, 중년 남성은 재차 고맙다고 인사한 뒤 할머니와 함께 내렸다. 두어 정거장 뒤에 그 여성도 하차했다. 40대로 보였고, 거동엔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나는 그 여성에게 공연히 못마땅한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40대라면 노인이 창가 자리로 드나들 때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편히 움직일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통로 쪽 좌석에 앉은 사람이 내준 좁은 공간을 통해 창가 좌석에 앉고 일어서는 일은 고령의 노인에게 쉽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렸고, 시간이 걸리니 노인의 동행자인 그 남성은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해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래서 그는 할머니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준 버스 기사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꼈던 모양이다.

어떤 이들은 ‘고령의 노인은 버스를 타지 말아야 한다’라고도 말한다. 그들에게 일본 도쿄의 버스를 한번 보여주고 싶다. 일본은 서울이나 경기도의 버스에 비해 노인 승객이 훨씬 더 많다. 2024년 기준 한국의 75세 이상 인구 비중은 8%인 반면 일본은 17%에 이른다. 지금 추계대로라면 2040년이 되기 전, 한국에서도 그 비중이 17%를 넘길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버스를 타지 말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노인 승객을 보게 될 것이다.

노인 승객을 태우고도 안전하게 버스를 운행하려면 지금보다 더 큰 배려와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건 청장년 세대뿐 아니라 노인 세대에게도 마찬가지다. 서울과 경기도의 버스는 지금보다 조금 더 천천히 달릴 필요가 있다. 휠체어 이용 승객이 탑승할 때면 버스 기사는 당연히 도와야 하고, 승객들은 휠체어를 위한 자리를 내줘야 한다. 장애인이나 노인이 승하차할 때 시간이 더 걸릴 수 있지만, 그때 바쁘다고 짜증을 내서는 안 된다.

도쿄의 젊은이들은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드물다. 노약자석에 거리낌 없이 앉아 가는 모습도 흔하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여전히 세대 간 배려의 문화가 남아 있다.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양보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 세대도 그들을 배려해 주면 좋겠다. 바쁜 출퇴근 시간에는 청장년들을 생각해 지하철과 버스 탑승을 최대한 피할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이면 지하철을 무임승차할 수 있는 제도 역시 손볼 때가 됐다.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7%에 불과했다. 지금은 그 비중이 20%에 이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그래서 그게 더 놀라운데, 한국은 80세 이상 노인의 자살률이 믿기 어려울 만큼 높은 나라다. 그만큼 한국은 노인이 살기에 쉽지 않은 나라다. 불과 20년 후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나라가 된다. 청장년과 노년이 서로를 배려하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은 지금의 노인에게도, 미래의 노인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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