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자본 혁신 막는 깨알 규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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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금융(IB)과 채권 부문에 특화한 A증권사는 금융당국에서 황당한 공문을 받았다. 24시간 콜센터를 운영하라는 지침이었다. “보이스피싱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리테일 영업을 하지 않는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일부 직원을 겸직 발령한 뒤 대표 전화번호를 넣고 24시간 대응 체제를 만들었다. 회사 측 예상대로 고객 전화는 한 통도 걸려오지 않고 있다.

현장과 동떨어진 규제들

[데스크 칼럼] 자본 혁신 막는 깨알 규제들

대형 증권사 하나투자증권은 지난 4월 금융위원회에서 ‘외국인통합계좌’에 대해 혁신금융 서비스를 지정받았다. 종전까지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을 사려면 한국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앞으로 현지 금융회사를 통해 주문 및 결제를 할 수 있을 것이란 호평이 나왔다. 하지만 첫 거래는 지난달 말에야 겨우 이뤄졌다. 협업 상대방인 해외 증권사가 2022년 제재받은 기록이 나오자 국내 당국을 설득하는 데 수개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첨단에 서있는 증권사에 이런 ‘깨알 규제’는 낯설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이 “꼭 금지해야 하는 것만 아니면 웬만큼 다 허용하는 걸 원칙으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네거티브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먼 얘기일 뿐이다.

또 다른 대형 증권사 직원들 컴퓨터는 평일 오후 5시만 되면 자동으로 꺼진다. 주 52시간 근무제 논의가 한창이던 5~6년 전 노조와 ‘PC오프제’에 합의한 여파다. 직원들이 잔무를 처리하려면 별도 근무 신청을 해야 한다. 아무래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게 직원들 얘기다. 개인 사정 때문에 회사에 남아도 컴퓨터를 보려면 부서장 승인을 얻어야 한다. 회사로서도 잔업 수당을 줘야 하니 생산성이 고민스럽다.

증권사 밖으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모든 상장회사에 적용되는 ‘육아휴직 사용률 공시’가 올해부터 시행됐다. 기업설명회(IR) 담당자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새 규제다. 출생 자녀를 둔 직원 중 출생일 1년 내 육아휴직을 활용한 비율을 매년 사업보고서에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요구한 대로다. 상장사들이 왜 저출생 극복 아젠다에 동원돼야 하는지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는다.

일부 국회의원은 한술 더 뜨고 있다. 역시 2000여 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성평등 임금 공시제’를 잇따라 발의했다. 남녀 간 고용률 및 임금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명분이다. 법제화되면 상장사들은 직무과 직급, 근속연수, 고용 형태별 임금 정보를 성별로 구분해 공개해야 한다.

공매도 금지 푼 뒤 주가 상승

상당수 규제는 자본시장 발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이 번번이 불발된 것도 곳곳에 도사린 ‘숨은 규제’ 때문이란 지적이 많다. 한때 세계 1위를 달린 파생상품 시장은 각종 ‘소비자 보호 장치’가 도입된 후 빠르게 위축됐다. 상품 규제가 쌓이자 투자자들은 암호화폐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 증시가 공매도 전면 금지 기간(2023년 11월~올해 3월) 지긋지긋한 박스권에 갇혔던 건 아이러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온 건 공매도가 전부 허용된 뒤다. ‘증시 급락을 막겠다’며 도입했던 낡은 규제를 완전히 푼 뒤에야 코스피지수는 4000을 뚫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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