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서울 공대 100인을 움직인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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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울 공대 100인을 움직인 한마디

김영오 서울대 공대 학장이 공대 교수 336명에게 전체 메일을 보낸 건 지난해 10월이다. 국방공학센터 신설에 앞서 수요를 먼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국방’(defence)과 ‘공학’(engineering)이라는 대의 하나만으로 뭉쳐보자는 제안이었는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하루 만에 교수 100여 명에게서 ‘참여하겠다’는 답변 메일이 쏟아졌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서울대 교수들이 이처럼 학과 간 경계를 단숨에 뛰어넘은 사례는 아마 서울대 개교 이래 처음일 것이다. ‘K방산’이라는 말 한마디가 자칭 타칭 ‘총장급’ 교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공대 내 12개 학부·학과를 총망라했더니 구슬이 절로 꿰어지기 시작했다. 개별 교수들이 그들만의 칸막이 안에서 수행하던 연구를 ‘디펜스’라는 새로운 현미경으로 분석하자 170여 개의 융합과제가 도출됐다.

'K방산'으로 뭉친 석학들

스텔스 기능에 최적화한 함형을 설계하는 것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삼아 현대전에서 전투병의 심리 상태 관리에 관한 인문학적 주제도 여럿 나왔다. 건설환경공학부를 주축으로 한국참호학회가 몇 년 전 설립됐다는 사실도 이번에 새로 알았다. 드론전이 대세가 되면서 전투 현장에서 참호를 어떻게 설계할지는 군의 시급한 수요 중 하나다. 국방공학센터 초대 센터장에 임명된 한승용 교수는 초전도 현상을 활용한 열융합을 연구하는 세계적 석학이다. 영화 속 아이언맨에게 슈퍼파워를 선사한 가슴 속 동력 장치를 연상하면 된다. 열융합은 원자력을 넘어 차세대 고밀도 에너지로 주목받는 분야로 미국, 중국, 프랑스 등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국방공학센터의 행보가 남다른 건 교수들이 먼저 나서 K방산의 약점과 간극을 메우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학장과 한 센터장의 요즘 주요 일과 중 하나는 국내 9개 방산기업을 만나 센터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9대 방산업체가 하나의 울타리에 모인다면 이 또한 K방산 역사상 첫 시도다.

중진국형 가성비 한계 넘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세계 각국의 ‘디펜스 테크’ 경쟁은 향후 시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성이 엄청나다. 군함만 해도 앞으로는 알래스카 등 북극을 자유자재로 항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지구온난화로 전에 없던 항로가 뚫린 북극을 ‘그레이트 게임’의 핵심 지역으로 정했다. 자원의 보고이자 러시아와 중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통제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에서다.

이런 관점에서 미래를 조망하면 전차와 자주포를 가성비 경쟁으로 수출하는 ‘방산 1차 붐’은 조만간 종말을 고할 가능성이 높다. 선진 강국들은 경쟁자를 압도할 수 있는 첨단 디펜스 테크를 원한다. 조선 강국 한국이 유독 함정 수출에서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건 차세대 연구로 빠르게 전환하지 못해서다. 유럽, 호주 등 부국을 공략하려면 ‘현재 존재하지 않는 선박’과 같은 선도적 연구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방산을 또 다른 말로 ‘정보 전쟁’이라고 부른다. 기술은 기본이고 각국 수요를 제대로 파악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한민국 국방 정보 허브’를 지향하겠다는 서울대 교수들의 포부가 그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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