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 게임사 크래프톤이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인수했다. 게임 이외 콘텐츠 분야에서 장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오리지널 IP(지식재산권)를 확보하려는 포석이다. 단순 협업을 넘어 IP를 직접 설계하고 소유하는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의 전환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크래프톤, 日 애니메이션 기업 인수
2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와 회사 발표에 따르면 크래프톤은 일본 종합 광고회사 ADK 그룹을 소유한 BCJ-31(ADK홀딩스의 모회사)을 약 750억 엔(한화 7103억 원)에 인수했다. BCJ-31은 글로벌 사모펀드 베인캐피탈재팬의 계열사다. 이번 인수로 ADK는 크래프톤의 연결 자회사로 편입된다.
ADK는 일본 3대 광고회사 중 하나로, 광고·마케팅은 물론 애니메이션 기획, 제작까지 아우르는 종합 콘텐츠 기업이다. ‘ADK이모션즈’를 통해 30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제작위원회에 참여했으며, 일본 내 연간 거래 규모는 3,480억 엔에 달한다.
크래프톤은 ADK 인수를 통해 일본 콘텐츠 생태계 내 핵심 파트너십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게임 IP의 영상화 및 미디어 확장 전략에도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특히 ADK의 70년 광고 인프라와 애니메이션 기획력, 크래프톤의 글로벌 게임 개발·서비스 경험을 결합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략이다.
장병규式 IP 전략, 본격 시동
이번 인수 추진은 크래프톤이 안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정면 돌파하기 위한 전략적 수단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크래프톤의 매출 대부분은 여전히 배틀그라운드 단일 IP에서 발생하고 있다. 단일 게임 타이틀에 편중된 수익 구조는 시장 변화와 이용자 취향 변화에 취약하다는 점에서 크래프톤에겐 리스크로 작용해 왔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인수는 이러한 리스크를 극복하고 게임 외 콘텐츠 영역에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다각적 포트폴리오 구축 시도로 평가된다.
크래프톤은 이미 ‘포스트 배틀그라운드’를 겨냥한 콘텐츠 다변화 전략을 여러 방면에서 실험 중이다. 2022년에는 미국 개발사 언 노운 월즈와 협업해 선보인 턴제 전략 게임 ‘문브레이커’를 통해 오리지널 세계관 기반 IP를 구축하고, 오디오 드라마·시네마틱 영상 등과 연계한 미디어 확장 실험을 병행했다.
이 같은 행보는 장병규 크래프톤 이사회 의장이 여러 차례 강조해온 ‘미디어 확장형 게임 기업’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장 의장은 2021년 기업공개(IPO) 간담회에서 “게임을 중심으로 다양한 미디어로 확장·변주하는 것이 크래프톤의 숙명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게임, 웹툰, 동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가 융합하는 시대에 게임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도전은 선택이 아닌 필연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일각에선 이번 일본 애니메이션 제작사 인수가 크래프톤이 구상해온 ‘아시아 IP 허브’ 전략의 본격적인 실행 출발점이 될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크래프톤은 이미 인도·동남아 지역 콘텐츠 스튜디오와 게임 개발사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해왔다. 한국을 거점으로 일본과 인도·동남아의 원천 IP를 연결하고, 이를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 공급하는 ‘동아시아 스토리텔링 플랫폼’으로의 도약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