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 기획재정부 미래경제전략국은 ‘범(汎)정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일일 점검회의’를 준비하는 주무 부서가 된다. 전달 20일 첫 발생 때 질병관리본부장이 맡았던 ‘메르스 방역 컨트롤타워’가 보건복지부의 장옥주 차관, 문형표 장관을 거쳐 결국 당시 총리 대행을 맡고 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으로 격상되면서다. 방역망이 뚫리며 환자가 속출하자 발 빠른 인사·예산권 행사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결과다. 미래경제전략국은 2012년 저출생·고령화, 신성장동력 확보 등 국가 중장기 과제에 대응하기 위해 신설된 조직이다. 당시 기재부 한 간부는 “미래경제전략이란 타이틀은 달고 있지만 전염병이 창궐하자 일손이 남는다는 이유로 ‘단기 현안 대응 부서’로 돌아간 것”이라며 “국가 장기 전략을 총괄하는 기재부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정부조직법은 기재부 장관 업무로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을 가장 먼저 나열한다. 기재부가 미래경제전략국을 장기전략국, 경제구조개혁국 등으로 바꿔가며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메르스 대응 이후에도 기재부는 장기 과제 해결보다 코로나 등 위기 대응, 금융·외환시장 안정, 추가경정예산 등 단기 경기 부양과 생활물가 잡기 등 현안 처리에 집중했다. 물론 기재부만의 잘못이라기보다 매 정권이 그걸 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는 동안 한국 출생률은 세계 꼴찌 수준으로 떨어졌고, 노동 등 구조개혁은 방치됐으며, 잠재성장률은 5년마다 1%포인트씩 떨어졌다. 1970년대 삼성 현대 등을 키운 장기 산업정책도 실종돼 지난 10여 년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했다. 기재부가 메르스 대응을 하던 바로 그해 장기 산업 전략인 ‘중국제조 2025’를 수립하고 이후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10년 새 전기차, 배터리, 드론 등 첨단 분야의 세계 1위 기업을 갖게 된 중국과 대별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새 정부 성장정책 해설서’를 읽다가 “진짜 성장을 위한 국가 거버넌스 구축에 나서겠다”는 구절에서 특히 공감이 간 건 이런 이유에서다. “국가의 지속가능한 도약을 위해 행정을 개혁하고 단기적 경기 대응 위주에서 벗어나 미래 대비 구조 전환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재정 운용을 혁신하겠다”는 대목도 마찬가지다. 국정기획위는 이를 통해 인공지능(AI) 등 미래 기술에 집중 투자하고 산업 경쟁력과 생산성도 높여 ‘3·3·5비전’(잠재성장률 3%, AI 3대 강국, 국력 5강)을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제는 늘 디테일에 있다. 국정기획위가 조만간 조직개편 방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이지만, 흘러나오는 언론 보도를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처럼 기재부를 예산 기능을 담당하는 기획예산처와 경제정책 등을 맡는 재정경제부(재경부)로 나누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된다고 한다. 금융위원회의 금융정책 기능을 재경부로 이관하고 인구정책 전담 조직인 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이런 조직 개편으론 재정 운용 혁신과 3·3·5비전 달성이 효과적으로 실현될지 의문이 든다. 우선 예산권 없는 재경부는 부총리 부처가 돼도 경제정책 추진과 정책 조정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 부처를 움직일 수단이 없어서다. 금융정책까지 떠안은 재경부는 단기 현안이 더 늘어 미래 과제는 더 외면할 공산도 크다. 예산처도 예산 편성을 위해 장기 재정정책을 짜는 조직을 둬야 할 텐데, 이는 재경부의 경제정책 기능과 중복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많은 관료가 예산과 경제정책 기능을 함께 떼어내 ‘국가전략기획부’를 신설하고 기재부는 금융·국제금융 등을 전담하는 ‘신(新)재무부’로 남기자고 제안하는데, 진지하게 검토할 만하다. 부동산 대책, 금융시장 안정 등 단기 현안은 재무부에 맡겨 두고 국가전략기획부를 부총리급 부처로 올려 현안과 거리를 두고 숲을 보게 하자는 것이다. 부총리는 AI 등 신산업 육성, 인구 감소 대응, 구조 개혁 등 핵심 미래 과제만 챙기고 전략적 예산 배분을 통해 이를 달성하는 데만 힘을 쏟으면 된다. 대통령까지 부총리에 힘을 실어주면 효과는 배가 될 수 있다. 국가적 비용을 늘리고 비효율을 높이는 조직 개편이라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