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광암 칼럼]‘이재명 실용주의’와 ‘反기업’은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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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상법개정안 등 본격 추진 태세
친기업 끝판왕 델라웨어 회사법
귀퉁이 떼어와 ‘反기업 입법’ 코미디
노란봉투법도 노사관계 대혼란 부를 것

천광암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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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을 강행하고, 40개 중점 추진 법안 처리에 본격적으로 나설 태세다. 40개 법안 중에는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우려를 표명해 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이 포함돼 있다.

먼저, 상법 개정안은 현행법에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뿐 아니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외 투기자본의 소송 공세와 배임죄 확대 적용 가능성 때문에 인수합병(M&A) 등 장기적 전략 경영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기업들은 걱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당의 이번 개정안과 같은 형태의 명문 조항을 상법(회사법)에 둔 나라는 세계적으로 전무하다. 개정론자들이 드는 거의 유일한 전거(典據)가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인데, 사정을 알고 보면 이런 블랙코미디가 없다.

델라웨어는 ‘기업 파라다이스’로 유명한 곳이다. 오죽했으면 사람보다 기업이 많다. 잘나가는 대기업들과 유망한 벤처회사들이 앞다퉈 ‘기업하기 좋은’ 델라웨어를 찾아오다 보니 2023년 기준으로 기업 수가, 인구(103만 명)의 곱절인 207만 개에 이른다. 그 배경 중 하나가 ‘친기업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좋을 회사법이다. 델라웨어 회사법이 경영 활동을 얼마나 자유롭게 보장하는지는 한국의 상법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첫째, 한국 상법은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지만, 델라웨어 회사법에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조항이 없다. 둘째, ‘포이즌 필’과 ‘황금주’ 등 한국에서는 금지된 경영권 방어 수단도 델라웨어 회사법은 자유롭게 보장한다. 셋째,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서 한국은 미주알고주알 다양한 규제를 두고 있다. 이사 수는 3명 이상이어야 하고, 특히 자산 규모가 2조 원 이상이면 이사의 3분의 2는 사외이사로 두어야 한다. 사외이사가 될 수 없는 결격 사유는 21가지나 된다. 델라웨어에서는 대부분 기업 자율에 맡겨져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이사가 경영 판단과 관련한 책임을 면제받으려면 주주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델라웨어에서는 정관에 규정을 둬서 포괄적으로 면제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델라웨어 회사법 102조 (b)항 (7)호에 다음과 같은 예외조항이 있다. 이사나 임원이 ‘회사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의 면책을 정관에 규정하더라도 이사나 임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는 없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한국의 상법 개정론자들이 전거로 삼는 것이 바로 이 조항이다.

델라웨어 회사법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상징적 선언인지 실효적 조항인지, 이 조항을 대륙법 체계에 속하는 한국에 이식하는 게 맞는지 안 맞는지 등에 대한 숱은 논란은 일단 ‘패스’하자. 델라웨어 회사법이 천명하고 있는 본질인 ‘자유로운 경영 활동’에는 철저히 눈을 감고, 한 귀퉁이에 있는 애매한 조항을 빌려다 우리 상법에 큼지막하게 못질한 뒤, 알토란 같은 우리 기업을 해외 투기자본의 ‘소송 제물’로 던져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소액주주에 대한 지배주주의 횡포는 굳이 무리해서 ‘기본법’인 상법을 흔들지 않고서도, 자본시장법 등을 개정해 방지하면 될 일이다. ‘노란봉투법’도 기업들의 투자 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반기업적 법안이라는 점에서 상법 개정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가뜩이나 과격한 노조 활동 때문에 기업들이 앞다퉈 한국을 떠나는 판인데 노란봉투법으로 ‘파업 천국’을 만들면 한국에 남아날 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노란봉투법에는 ‘직접 계약 관계가 없더라도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도 있는데, 노사협상 현장에 일대 혼란을 몰고 올 가능성이 크다. 일례로 현대차의 경우 1차 협력업체만 700여 개, 2∼3차 협력업체까지 합하면 5000여 개에 달하는데, 하청노조들이 너도나도 “현대차 사장 나와!”라고 덤비면 1년 내내 협상 테이블에 끌려다녀야 할 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시정연설에서 “경제성장률이 4분기 연속 0%에 머물고 있다”며 시급한 추경 처리를 호소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이 높일 수 있는 성장률은 기껏해야 0.2%포인트다. ‘재정주도 성장’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게 이런 정도다. 여차하면 ‘잠자는 물가’를 건드릴 위험도 있다.

이 대통령이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경제의 핵심은 기업”이고 “기업 성장이 곧 경제 성장”이다. 상법 개정과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어놓고 경제 회복을 바라는 것은 모순이고 몽상이다. 반(反)기업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재명 실용주의’가 성공하기 위해 통과해야 할 첫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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