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적인 전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에서 시작된다. 인공지능(AI)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바라보고 기업의 미래를 어떤 관점에서 재정의하는가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앞서 〈상〉편에서 살펴본 사노피와 카맥스의 사례는 우리에게 중요한 통찰을 준다. 이들은 AI를 통해 단순히 '무엇을 할 것인가'를 넘어 '어떤 기업이 될 것인가'를 증명했다. 이들의 담대한 여정 속에서 우리는 성공적인 AI 전환(AX)을 위한 세 가지 핵심 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리더십이다. 미래 기업의 '설계자'가 되어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AX는 기술팀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CEO의 최우선 어젠다이다. 리더는 'AI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기능적 질문을 넘어, 'AI를 통해 우리 회사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사노피의 경영진이 단기적 성과 압박에도 수년간 막대한 자금을 데이터 플랫폼 통합과 AI 파트너십에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은 'AI 기반의 디지털 제약사'라는 명확한 청사진과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변화의 저항을 돌파하는 최고 책임자이자 그 비전을 조직 전체에 전파하는 최고 전파자여야 한다.
두 번째, 데이터이다. 단순한 기름(Oil)을 넘어 조직을 살리는 생명의 피(Blood)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데이터는 기업이라는 유기체의 모든 세포에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외부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하는 '혈액'이다. 카맥스의 AI 엔진이 정확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는 이유는 2600만건이라는 방대한 양뿐만 아니라 전국 매장에서 표준화된 방식으로 수집, 정제, 통합 관리되는 '깨끗한 피'가 실시간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부서별로 흩어져 있는 데이터 사일로(Silo)를 허물고 전사적 데이터 거버넌스를 확립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데이터라는 공용어로 소통하고 직관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해 의사결정하는 문화가 조직의 혈관 곳곳에 흘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략이다.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학습하며 과감하게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AX라는 거대한 산을 한 번에 오르려 해서는 안 된다. 가장 큰 사업적 파급 효과를 낼 수 있는 핵심 영역을 선정해 '등대 프로젝트(Lighthouse Project)'를 시작해야 한다. 작게 시작해 빠른 시간 안에 측정 가능한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기술, 노하우는 철저히 문서화하고 공유하여 빠르게 학습하고 조직 전체의 자산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하나의 등대가 성공적으로 불을 밝히면, 그 성공 모델을 바탕으로 전사적인 AI 플랫폼을 구축하고 우수 사례를 조직 전체로 과감하게 확장하는 민첩한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원칙을 관통하는 마지막 화룡점정은 바로 '사람과 문화'에 있다. 최고의 설계도(리더십), 최상의 자원(데이터), 최적의 공법(전략)이 갖춰져도 이를 실행할 숙련된 건축가(사람)와 협업을 장려하는 현장(문화)이 없다면 위대한 건축물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 구성원 모두가 AI를 동료처럼 여기며 자연스럽게 활용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소통을 당연하게 여기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는 'AI 네이티브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몇 번의 교육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더의 끊임없는 소통과 지지,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조직의 자산으로 축적되는 학습 생태계가 조성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PwC의 AI가 2030년까지 세계 경제에 최대 15조7000억달러를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은 AX가 만들어낼 부의 규모와 산업 지형의 변화가 얼마나 거대할지를 예고한다. 이제 선택은 명확하다. AI라는 반짝이는 망치를 손에 쥐고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망치를 들고 기업이라는 건축물 전체를 새로 짓는 위대한 건축가가 될 것인가. 지금 당장, AI를 중심으로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길 때다. 주저하는 사이 당신은 미래의 주인공이 아닌 과거의 화석이 될 것이다.
김태형 단국대 대학원 데이터지식서비스공학과 교수·정보융합기술·창업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