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구글이 오늘날 세계 최대 빅테크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구글 크롬이 있다. 구글 크롬 브라우저는 2008년 처음 출시됐으며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파이어폭스, 오페라 브라우저보다 간편한 구성과 넓은 가독 범위로 빠르게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당시만 해도 구글 크롬 자체는 구글 검색 엔진의 이용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였겠지만 이것이 오늘날 구글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지난 7월 9일, 퍼플렉시티가 자사 AI를 탑재한 코멧 브라우저를 공개했다 / 출처=퍼플렉시티
높은 편의성과 활용도를 인식한 사람들이 유입되자 구글은 다양한 자사 서비스와 구글 크롬 브라우저를 연결했고, 더 많이 검색 엔진을 이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구글 애드센스와 검색 광고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자연스레 끼워 넣었다. 오늘날 전 세계 인터넷 이용자의 3분의 2가 구글 크롬 브라우저를 이용하며, 구글의 연간 매출 중 75%인 2646억 달러(363조 9043억 원)가 광고 수익에서 비롯된다.
광고 수익뿐만 아니라 AI 데이터 확보에도 중요한 ‘브라우저’
구글 크롬 브라우저의 높은 이용률은 AI 시장에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AI 모델을 구축하고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한데, 구글은 검색엔진과 유튜브 등을 통해 이 데이터를 확보한다. 덕분에 구글은 막대한 광고 수익을 거두는 것은 물론 AI 개발 측면에서도 다른 경쟁사들과 비교해 엄청난 우위를 지니고 있다.
구글 크롬 브라우저는 오랫동안 다양한 플랫폼에서 기본 브라우저로 인식되어 왔다 / 출처=구글
하지만 잔치는 끝난 분위기다. 지난해 8월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구글이 스마트폰 웹브라우저에서 자사의 검색 엔진을 기본으로 설정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내렸고,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에 검색엔진 유지를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급한 점을 반독점법 위반으로 판결했다. 이를 근거로 미국 법무부는 크롬 브라우저 부문을 매각하거나 경쟁 업체에 데이터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등의 제안을 내린 상황이다. 십수 년 간 구글이 쌓아온 브라우저 독점 구조에 실시간으로 금이 가고 있다.
AI 기업의 브라우저 시장 진출, 첫 도전은 퍼플렉시티
한편 2023년 오픈AI가 GPT-3를 출시하며 검색에 대한 사용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구글의 검색엔진에 단어나 질문을 물어보고 여기에 일치하는 결과를 찾는 방식이었지만, 대형언어모델은 문장이나 대화로 원하는 내용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는 많은 대형언어모델들이 온라인 연결을 통해 자연어로 원하는 내용을 검색할 수 있게 되면서 AI 기반 검색은 훨씬 더 빠르게 인기를 끌고 있다.
퍼플렉시티 코멧 브라우저는 현재 월 200달러(27만 5000원)의 유료 구독자에게만 제공되며, 무료 구독자는 등록 순서에 따라 순차적으로 제공된다 / 출처=퍼플렉시티
검색 시장의 흐름이 바뀔 조짐이 일자 AI 기업들이 구글의 꿀단지를 노리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퍼플렉시티다. 퍼플렉시티는 올해 2월 팟캐스트를 통해 새로운 웹브라우저 ‘코멧(Comet)’을 개발 중이라고 발표했다. 코멧 브라우저는 복잡한 작업 흐름을 유연한 대화로 처리해 ‘탐색에서 사고로의 전환을 가능하게 한다’를 표방한다.
아라빈드 스리니바스 퍼플렉시티 CEO는 “브라우저를 만드는 이유는 앱 밖에서도 데이터를 확보해 사용자에 대한 더 나은 이해를 얻기 위함”이라면서, “우리는 데이터를 통해 사용자 프로필을 개선하고, 발견 피드를 통해 광고를 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업계에서는 퍼플렉시티가 코멧 브라우저를 통해 사용자 검색 기반의 맞춤형 광고 제공을 통해 새로운 수익화 모델을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코멧 브라우저는 구글처럼 검색엔진을 찾는 게 아니라 자연어 검색을 통해 대화로 자료를 검색한다 / 출처=퍼플렉시티
코멧 브라우저는 지난 7월 9일 공개됐으며, 퍼플렉시티 맥스 유료 구독자를 대상으로 먼저 서비스가 시작됐다. 일반 사용자는 대기자 명단에 등록하면 올 여름 중 코멧 브라우저를 사용할 수 있다. 코멧 브라우저는 캘린더 요약, 탭 관리, 웹 페이지 자동 탐색 등을 자동화하는 코멧 어시스턴트가 탑재되며, 퍼플렉시티 AI 검색 엔진을 기반으로 검색은 물론 AI가 결과를 자동으로 요약한다. 자세한 내용은 퍼플렉시티 홈페이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오픈AI 역시 빠르면 몇 주 내에 새로운 브라우저를 공개할 거란 소식이 전해졌다 / 출처=오픈AI
한편 지난 10일(현지 시간) 로이터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수 주 내로 오픈AI가 새로운 브라우저를 공개할 것이라는 보도를 냈다. 오픈AI 역시 사용자 데이터를 직접적으로 끌어모으고, 5억 명의 GPT 소비자들이 구글 엔진에서 AI 기반 브라우저로 옮겨오는 것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2월부터 준비한 퍼플렉시티와 AI 시장에서 충돌하고 있는 구글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한 소식이다.
오픈AI가 구체적인 브라우저 계획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4월부터 구글 크롬 사업부를 인수한다는 소문이나 구글 크롬을 담당했던 수석부사장 등을 영입했다는 소문이 돌며 브라우저 사업에 진출할 가능성을 내비쳐 왔었다. 서비스는 오픈AI의 AI 에이전트가 사용자 대신 예약이나 양식 작성, 웹사이트 내 페이지 요약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능이 주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광고 경쟁 넘어 데이터 전쟁으로 번지는 브라우저 사업
구글도 가만히 있진 않는다. 지난해 구글 브라우저 검색에 ‘AI 개요’를 추가했고, 구글 렌즈 통합을 통해 브라우저 상에서 직접 웹페이지의 이미지 및 텍스트를 검색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또 향상된 검색 기록을 통해 자연어로 질의응답도 할 수 있다. 퍼플렉시티와 오픈AI는 완전히 새롭게 AI 위주로 설계된 브라우저를 내놓는다면 구글은 기존 크롬 브라우저의 영향력에 AI 기능을 얹은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구글 역시 통합 AI 비서를 추구하겠지만 타사처럼 완전히 플랫폼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두 가지 시나리오로 나뉜다. 오픈AI나 퍼플렉시티가 검색 과정 없이 바로 결과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웹브라우저 경험을 바꾼다면, 구글이 판매할 수 있는 광고 공간과 확보하는 데이터가 줄어든다. 오픈AI와 퍼플렉시티가 장기적인 수익 모델을 확보하며 AI 에이전트 기반 브라우저 경쟁이 본격화하고, 구글 역시 손해는 입을지라도 독점 시장은 아니라는 항변의 계기가 마련된다.
브라우저 사업의 핵심은 사용성보다도 확장성과 안전에 달렸다. 다른 기업들이 얼마나 잘 만드는가에 따라 브라우저 시장의 전개가 달라질 예정이다 / 출처=구글
다른 시나리오는 진입 장벽에 달렸다. 그간 사용자들이 구글 크롬을 선택한 이유는 활용도뿐만 아니라 안정성, 개인정보 보호 성능 등도 관련돼 있다. 오픈AI나 퍼플렉시티가 브라우저를 잘 만들더라도 요구 성능이 높거나 개인정보 보호에 취약하다면 핵심 이용자를 제외한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이렇게 되면 구글의 시장 영향력은 계속 이어지며 AI 산업 경쟁의 우위를 가져갈 것이다. 물론 크롬 브라우저는 독립 기업이 되겠지만 말이다.
데이터는 AI 산업의 연료고, 브라우저는 이를 캐는 광산이다. 웹 자체에서 데이터를 주고받는 모든 과정이 브라우저를 거치는 만큼, 브라우저를 확보하는 것이 AI 기업들의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메타나 xAI처럼 독자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운용하거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운영체제를 가지지 않는 한 말이다. 올해 말이면 본격적으로 세 개 기업이 브라우저 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텐데 최후에 웃는 자만 남을지, 모두가 승리자가 되는 시장일지는 얼마나 브라우저가 잘 잘 만들어지냐에 달렸다.
IT동아 남시현 기자 (sh@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