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지현]이재명도 “성찰하겠다”는 그 말은 꼭 지켜야 한다

1 month ago 10

김지현 정치부 차장

김지현 정치부 차장
헌정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이 탄핵되던 4월 4일의 광화문은 그동안의 혼란과 갈등이 무색할 만큼 평화롭고 차분했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파면이란 당연한 결과를 간절히 기다렸고, 4개월 넘게 빼앗겼던 일상으로의 복귀를 갈망했다는 의미일 거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한 직후 낸 긴급 입장문에서 “현직 대통령이 두 번째로 탄핵된 것은 다시는 없어야 할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이라며 “저 자신을 포함한 정치권 모두가 깊이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해야 될 일”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이제 끝이 아닌 시작”이라며 의원들에게 언행 주의를 당부했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민주당이 지금 승리감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도 국회의 책임도 지적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결정 선고 요지를 낭독하던 중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민주당 정청래 의원 쪽을 바라보며 ‘야당의 이례적으로 많았던 탄핵소추’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의 일방적 통과’ ‘헌정사상 최초의 예산 야당 단독 의결’ 등을 줄줄이 읊었다.

그는 “피청구인(윤석열)과 국회 사이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돼야 할 정치의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했어야 한다”며 “피청구인 역시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한다”고 양측을 질책했다.

주심인 정형식 재판관도 보충 의견을 통해 국회의 탄핵소추안 발의 횟수를 제한하는 입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제도적 틀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지 못한 윤 전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 지경이 되도록 극한까지 몰고 간 야당의 탓도 분명히 물은 것이다.

그런 만큼 이 대표가 먼저 ‘성찰하고 책임을 통감하겠다’고 한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그 말을 조기 대선 과정에서도 잊지 않고 꼭 지켰으면 한다.

민주당 내에선 벌써부터 이미 정권을 다 잡은 듯한 특유의 오만방자한 모습이 나오고 있다. ‘윤석열 탄핵 축하 기념’ 수건을 만드는 의원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줄탄핵한 덕분에 윤석열 파면을 앞당길 수 있었던 것”이라고 ‘정신 승리’ 하는 강성 친명계 의원들도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헌을 제안하자 양문석 의원은 “개나 줘라” “제발 그 입을 닥쳐라”라고 했고, 정청래 의원은 “국회의장 놀이를 중단하라”고 했다. 국회의장을 향한 최소한의 예의나 존중조차 없다. 하긴, 헌재의 탄핵 선고일 지정이 자신들 계산보다 늦어지니 초유의 헌법재판관 탄핵을 운운하고, 국무위원도 전원 탄핵시켜 국무회의를 막겠다고 협박하던 정당이니 이 정도는 아직 약과일지 모르겠다. 그동안 당내 강경파의 폭언과 폭주에 이 대표는 침묵으로 사실상 동조해 왔다. 당 관계자는 “서로 ‘굿캅’ ‘배드캅’ 역할을 나눴던 것”이라던데 더 이상 그런 핑계도 통하지 않을 시점이다. 이제 이 대표가 책임지고 수권 정당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어렵게나마 이뤄지고 있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기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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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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