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회피를 되풀이한다면… 끝마무리의 가치[정도언의 마음의 지도]

4 days ago 3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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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시작이 반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반은? 끝마무리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시작하기를 무척 어려워합니다. 머뭇거립니다. 망설입니다. 따집니다. 자세히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생각만 합니다. 발품을 들여서 알아보려 하지 않습니다. 시작은 했지만 끝마무리를 못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말은 격려이자 함정입니다. 시작이 어렵지 끝내기는 쉽다고 오해합니다. 그러니 다른 속담이 등장합니다. “시작한 일을 끝을 보라.”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합니다!

시작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보겠습니다. 누구를 사귀려고 할 때는 우선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합니다. 용기도 내야 합니다. 아니면 머뭇거리며 망설이다가 시간을 헛되이 쓰고 그만둡니다. 그 뒤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해결이 아니고 회피에 중점을 두기 때문입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작하면 나비효과처럼 자신의 삶에 번지면서 회피, 지연을 되풀이합니다.

시작은 했으나 끝마무리가 힘들다면? 이미 익숙해진 것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이 저항합니다. 선택은 늘 혼란스러워서 이성적, 합리적 판단이 쉽지 않습니다. 끝내기 자체로 만족해야 할까요? 앞으로도 닥치게 될 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내면의 힘을 끝마무리 과정에서 키워서 성장해야 한다면? 단순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갈망합니다.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연결되기를.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서적 연결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연결된 관계는 두 가지 형태로 지속됩니다. 두 사람이 함께 새롭게 만들어 내는 치유적 관계, 아니면 일방적인,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도구적 관계입니다. 관계의 의미와 가치에 관한 성찰적 탐색이 없다면 정서적 연결은 좌절, 실망, 상처로 마무리됩니다.

자세히 살펴서 찾아내는 과정인 탐색은 어렵습니다. 수학 공식으로 풀어낼 수 없는 영역입니다. 관계를 맺은 두 사람 각자가 고유한 개인사, 경험, 관점, 가치관을 지니고 있고 그것들을 기반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상대방이 지닌 고유한 성격 특성에 대처하는 방안을 다른 사람이 찾아줄 것을 기대하지 마세요. 자신에게 잘 맞는 방식을 스스로 최선을 다해 찾아야 합니다. 모든 관계에 적용할 한 가지 답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힘에 부치면 믿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창의와 치유의 관계에서 얻는 것은 발견이 아니고 재발견입니다.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을 미처 모르고 있다가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익숙한 것, 오래된 것에서 새것을 찾아내는 과정입니다. 새로운 관점으로, 창의적으로 재구성해서 자신을 돕는 결과를 성취하게 됩니다.

일단 시작하면 끝내기는 쉽다고 여깁니다. 쉽게 헤어지고 잊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완전히 끝장내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습니다. 가끔은 그런 사건이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몰고 옵니다. 모든 끝내기는 세심한 끝마무리를 거쳐야 합니다. 충동적인 단절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을 끝마무리하는 과정에서도 이것이 핵심입니다. 분석 관계의 갑작스러운 단절은 분석을 받는 사람과 분석가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순조롭지 않으면 결과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에서도, 현실 관계에서도.그런 의미에서, 끝낸다는 의미의 단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흔히 이야기하는 ‘종료(終了)’, ‘종결(終結)’ 모두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사건 종료, 전쟁 종결과 같이 칼로 자르듯이 단절하는 표현들입니다. 관계가 끝마무리가 된 미래에 새로운 관계에서 경험할 가능성을 닫는 느낌입니다. 여는 방향을 내치고 닫는 쪽을 가까이합니다. 종료나 종결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들을 검색하면 어원에 심지어 ‘죽음’도 들어 있습니다.

헤어짐은 후유증이 없도록 매듭을 단단히 맺어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에서 같은 실수가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의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현재 관계의 위기는 새로운 관계의 기회입니다. 위기는 변화의 촉매제입니다. 그 의미와 가치를 얼마나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지는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관계를 이미 충동적으로 단절했다면 회피하기보다는 자신을 깊게 성찰하는 접근 통로로 이용해야 합니다.

인생의 돌파구를 찾으시나요? 무너질 때가 돌파구가 열린 때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갇혀 있던 곳에서 탈출할 실마리와 행동할 기회가 생긴 겁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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