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한은 구조개혁 시리즈는 실패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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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023년 11월 ‘초저출산과 초고령사회’를 조망한 인구구조 보고서와 ‘거점도시’ 중심의 지역경제 발전 전략을 다룬 보고서를 내놓으며 ‘구조개혁 보고서’ 시리즈를 시작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에 따르면 16~17개 보고서가 지난 2년간 발간됐다. 한은 구조개혁 보고서의 성과는 어땠을까. 논쟁적인 보고서를 통해 다양한 제언을 내놨지만 받아들여진 게 없다는 ‘무용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구조개혁 필요성을 환기하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반론도 적잖다.

노동·농업계 반발 극심

[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한은 구조개혁 시리즈는 실패했나

한은이 논쟁적인 이슈를 처음 제기한 보고서는 작년 3월 나온 돌봄 보고서다. 돌봄 비용을 낮추기 위해 사인 간 계약, 업종별 최저임금 차등화를 통해 외국인 돌봄 노동자를 유입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가 필리핀 가사관리자 시범사업을 하고, 정부 차원의 가사사용인 시범사업까지 추진됐지만 노동계의 반발로 사실상 중단됐다.

그해 6월 내놓은 물가수준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사과 등 농산물 수입을 주장한 것은 농업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달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 유상대 한은 부총재가 불려가 “농산물 가격에 대한 인식이 잘못됐다”며 질타받았을 정도다.

[강진규의 데이터 너머] 한은 구조개혁 시리즈는 실패했나

한은의 주장이 어느 정도 구체화된 사례도 있다. 거점도시를 중심으로 지역균형 개발에 나서야 한다는 데는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의 지역균형 발전 정책도 ‘5극3특’ 등 거점을 중심으로 한 광역 생활권 개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지역별 비례 선발제를 주장한 교육 관련 보고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직 대학 중 이를 적용한 곳은 없지만 국회에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지역 의원이 많다.

부동산 신용 집중 문제를 지적하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에 전세 대출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10·15 부동산 대책에 1주택자에 한해 반영됐다. 한국형 리츠를 활용한 주택금융 활성화 방안은 현 정부의 적금 주택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불안정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기반 단기금융시장을 무위험지표인 KOFR 기반으로 바꾸는 개혁은 순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택시 면허 매입 후 자율주행택시를 허용하자는 보고서는 관계부처와 업계가 저자를 수차례 불러 설명을 듣기도 했다. 서비스업 발전을 통해 수출을 다변화하자는 주장도 관계부처의 공감을 얻고 있다.

청년 고용 감소를 막기 위해 임금 조정이 수반된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보고서는 여전히 논쟁이 많다. 여당 의원들의 법안 대다수는 임금 조정 없는 정년 연장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법안에 ‘임금 조정을 할 수 있다’ 정도의 표현이 담기기 시작했다. 강제성 없는 문구이지만 청년 고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인 인식 변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정치적 결단의 경제적 근거

한은이 제시한 구조개혁 과제 중 대다수는 주장 그대로 받아들여지지는 않고 있다. 그렇다고 실패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국민에게 ‘구조개혁이 꼭 필요한 과제’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한은 구조개혁 보고서를 추켜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잠재성장률’이 대통령 선거 공약과 새 정부의 주요 목표로 등장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현재 1.9%로 하락한 잠재성장률을 3%로 높이겠다고 공언했고, 최근 국무회의에서는 “잠재성장률 하락 흐름을 반전시키는 첫 정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은 필수다. 한은이 ‘오지랖’이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구조개혁 목소리를 계속 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개혁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그 결정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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