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개발의 모든 과정에 인공지능(AI)과 자동화 기술을 입혀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혁신을 주도하는 '바이오 생태계의 정보기술(IT) 회사'가 되겠습니다."
김우연 히츠 대표는 최근 서울 강남 본사에서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포부를 밝혔다. 올해로 설립 5년차인 히츠는 제약·바이오 연구실에서 수작업으로 하던 일련의 약물 연구개발 프로세스를 디지털로 구현해냈다. 바로 '가상 실험실'이다. 이 분야에선 미국 인실리코메디슨과 히츠가 글로벌 쌍두마차다.
김 대표는 "제약·바이오 연구소에서 이뤄지는 연구개발 프로세스를 가상의 실험실에서 완벽하게 구현해 의약품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여주는 게 우리의 지향점"이라며 "앞으로는 온갖 실험 데이터를 서로 연결시켜 신약 개발에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고 했다.
LG와 산학 연구하다 창업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인 김 대표가 딥러닝 기반 약물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6년 3월이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이 계기였다. 바둑 1급의 고수였던 김 대표는 알파고의 압승에 충격을 받았다. 4~5급 수준에 머물던 AI 바둑 실력이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향상됐기 때문이었다. 알파고는 기존 AI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알파고가 기반한 딥러닝이 무시무시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단순 연산이 아닌 경험 연구가 중요한 신약 개발에 AI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김 대표는 대학 연구실 제자들과 함께 계절학교 강의까지 쫓아다니며 딥러닝을 배웠다. 딥러닝 기반의 신약 AI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김 대표는 "분자 내 전자전달이나 화학반응 등을 시뮬레이션 하는 양자역학 계산법 개발을 주로 했는데 알파고 이후에는 신약 AI로 연구 방향을 틀었다"고 했다.
신약 AI 개발 역량을 차곡차곡 쌓아가던 2019년, 김 대표는 LG화학으로부터 산학협력 제안을 받았다. LG화학이 신약 개발 전반에 AI를 접목하려는 시도를 하던 때다. 김 대표는 산학협력 계약을 앞둔 2020년 5월 LG화학의 제안으로 히츠를 창업했다. 히츠의 가능성을 눈여겨봤던 LG화학은 마곡 LG사이언스파크 인큐베이팅센터에 입주하도록 배려해줬다.
히츠는 창업 첫해 3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렸고 흑자를 냈다. LG화학은 물론 보령, HK이노엔, 일동제약 등이 히츠에 일감을 맡겼다. 문제는 인력 확보였다.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IT기업들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입도선매하던 때다. 더군다나 근무지가 강남이나 판교가 아니면 개발자가 입사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히츠는 마곡 시대를 1년여만에 접고 강남역 근처로 본사를 옮겼다.
아스트라제네카가 반한 '신약 디지털 랩' 개발
김 대표의 창업 아이템은 '가상 실험실'이었다. AI와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IT 자원으로 디지털 랩을 만들어 제약·바이오 기업들에게 구독료를 받고 서비스하는 게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또다른 협업모델도 구축했다. 가상 실험실 플랫폼으로 신약을 개발해 기술수출 성과를 내면 마일스톤을 나누는 사업이다. 그렇게 맺은 공동개발 계약은 10여건에 이른다.
히츠가 글로벌 빅파마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2023년 1월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쇼(CES)에서였다. 카이스트관에 자그맣게 부스를 차린 히츠는 신약 AI 플랫폼 '하이퍼랩' 초기버전을 선보였다. 기존 컴퓨터 기반 신약설계 기술인 CADD보다 진일보한 생성형 AI 기반의 약물 설계 솔루션이었다.
반응은 좋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미국법인 직원들이 하이퍼랩의 가능성을 알아보고는 본사와 미팅을 주선해줬다. 스웨덴 이노베이션파크에 입주 제안도 받았다. 김 대표는 "아스트라제네카가 당시 아이랩(iLAB)이라는 신약개발 AI를 개발 중이었는데 하이퍼랩과 비슷한 컨셉트였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내부의 이해상충 문제로 양사간 추가 협력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빅파마가 가능성을 알아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고 했다.
하이퍼랩은 '기존 실험실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히츠가 추구하는 가상 실험실의 비전이기도 하다. 히츠는 2023년 말 '하이퍼랩'이라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정식 출시했다. 약물 유효물질 가상 탐색, 신규 구조 디자인, 약물-단백질 결합력 예측 등의 기능을 담은 생성형 AI 기반 약물설계 플랫폼이었다.
출시 초기엔 기존 CADD 제품들과 하이퍼랩이 비슷하다는 인식이 강했다. 약물 합성 시뮬레이션 툴인 슈뢰딩거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던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하이퍼랩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사업 물꼬가 트인 것은 지난해 4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미국암연구학회(AACR)'였다. 하이퍼랩의 첫 대면 세일즈 자리였던 이 행사에서 암 진료와 연구에서 세계 1위로 꼽히는 MD앤더슨이 가입 신청을 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화학연구원도 고객이 됐다. 화학연구원은 연구원 20명이 하이퍼랩을 통해 신규 약물을 발굴 중이다. 김 대표는 "MD앤더슨, 화학연구원 등의 레퍼런스가 쌓이면서 하이퍼랩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며 "국립암센터, 서울아산병원도 하이퍼랩 고객이 됐다"고 했다.
히츠의 경쟁자는 미국 인실리코메디슨과 리커젼이다. 다만 리커젼은 현재 AI 약물 설계 기술을 자체 신약 개발에만 쓰고 있다. 인실리코메디슨의 AI 기반 약물설계 엔진 '케미스트리42'는 글로벌 빅파마는 물론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활용하고 있다. 30가지 이상의 생성모델을 사용해 신규 물질을 생성하고 디자인한다. 로봇을 통한 자동실험검증시스템도 갖췄다.
반면 히츠의 하이퍼랩이 갖는 차별점은 클라우드를 통해 실험 모델이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약물 합성, 실험 등의 자동화가 가속화되면서 데이터가 무한 생산되고 있는 트렌드와 맞아떨어지도록 설계하고 있다"며 "동일한 예산으로 더 많은 가설을 세우고, 더 빠르게 실험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게 강점"이라고 했다.
가성비도 뛰어나다. 하이퍼랩의 월 사용료는 3000달러다. 인실리코메디슨 케미스트리42 이용료의 3분의 1 수준이다. 김 대표는 "약물 설계 기능과 성능이 엇비슷한데도 가격 차이가 크다"며 "국내 주요 제약사들이 하이퍼랩 도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상 실험실서 약물 후보 발굴…화합물 주문 제작까지"
히츠는 올해 3월 하이퍼랩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놨다. 바로 '하이퍼랩 2.0'이다. 달라진 점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는 구글 알파폴드3 수준의 복합체 구조 분석 기술이다. 단백질 구조를 몰라도 염기서열만 알면 복합체 구조를 분석해준다. 둘째는 LLM(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의 AI 어시스턴트 기능이다. 설계 근거와 의사결정 과정을 대화형으로 안내해 연구자가 빠르게 가설을 세우고 검증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는 화합물 가상 라이브러리 서비스다. 화합물 유통회사인 미국 이몰레큘즈와 윈윈하는 구조다. 히츠는 이몰레큘즈가 보유한 11조개 화학 합성물 라이브러리에서 사용자가 원하는 타깃에 맞는 화합물을 AI 기반으로 찾아서 추천해주고, 해당 화합물의 합성을 원할 경우 이를 이몰레큘즈에 연결해준다. 김 대표는 "자체 개발 생성형 AI를 활용하기 때문에 사용자가 원하는 타깃의 약물을 11조개 화합물 라이브러리에서 찾는데 48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기존 CADD 솔루션으로는 수년이 걸릴 작업"이라고 했다.
이몰레큘즈가 보유한 화합물 라이브러리는 세계 최상위 공대 가운데 한 곳으로 꼽히는 ETH취리히 대학에서 스핀오프한 신플켐이 구축했다. 신플켐은 이몰레큘즈의 자회사다. 김 대표는 "약 8억개로 추산되는 사람이 만든 합성물 라이브러리보다 규모가 크다"며 "합성 성공률은 85%에 이른다"고 했다.
이몰레큘즈의 화합물 합성 경쟁력도 뛰어나다는 평가다. 이몰레큘즈는 분자 합성 작업을 사람이 아닌 로봇으로 대체했다. 이를 통해 제조단가를 낮췄다. 합성물 제조 비용은 건당 평균 500~600달러다. 4주 내에 배송해준다. 김 대표는 "지난해 8월 히츠와 이몰레큘즈가 협업 논의를 시작했는데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협력이 빠르게 진행됐다"며 "앞으로도 두 회사간 협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히츠는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한-스위스 국가과제도 진행 중이다. 바젤대, 신플켐 등과 공동으로 하이퍼랩을 업그레이드 하는 프로젝트다. 김 대표는 "기존 가상 데이터는 물론 바젤대에서 이뤄지는 실험 데이터를 통합해 향후 3년간 AI를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연결'이 다음 목표…"약물 설계-합셩-데이터 재생산 선순환"
히츠의 다음 화두는 '연결'이다. 약물 합성과 실험의 자동화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어서다. 자동화를 통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될 데이터를 통해 하이퍼랩을 업그레이드 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게 '하이퍼랩 3.0'의 목표다.
미국과 유럽의 연구 현장에선 자동화 설비와 로봇 도입이 활발하다. 김 대표는 "일부 빅파마 연구소에선 1주일에 수천개의 화합물을 만들고 실험까지 이뤄지는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돼 있다"며 "실험, 데이터, 소프트웨어가 연결되면서 의약품 개발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했다.
히츠는 셔모피셔 등과 협업을 추진 중이다. 히츠는 셔모피셔의 생체조직 분석 장비에 생성형 AI 기반 오믹스 분석 솔루션을 싣는 논의를 하고 있다. 병원에서 환자 조직 분석에 주로 사용하는 장비다. 김 대표는 "솔루션이 탑재되면 유전자 시퀀스, 프로테오믹스, 단백질 구조 등을 분석해주는 것은 물론 바이오마커까지 자동으로 찾아주게 될 것"이라며 "바이오인포매틱스 분석이 AI로 자동화된다"고 했다.
히츠는 또다른 글로벌 제약사와도 하이퍼랩 공급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 대표는 "AI로 약물을 설계하고 화합물 구매와 실험까지 한 곳에서 수행할 수 있는 장비가 나오면 의약품 개발이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히츠는 실험장비, 진단·분석장비 등에 AI 솔루션 탑재를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김 대표는 "바이오 산업은 다른 전통산업에 비해 IT화가 상대적으로 늦었다"며 "바이오의 IT 기업이 돼 산업 혁신을 이끄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내년 매출 30억원…1~2년 내 IPO 도전"
히츠는 하이퍼랩의 기능을 다양화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우선 음성 지시 기능이다. 연구원이 실험을 하는 도중에 약물 설계 등에 대한 지시를 음성으로 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특허 분석 기능도 탑재할 예정이다. AI 기반의 화합물 구조 분석을 통해 신규 화합물이 기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가려내는 서비스다. 현재 비슷한 방식으로 특허 침해 여부를 확인하는데는 수천만원의 소프트웨어 구독 비용이 든다.
히츠는 지금까지 총 103억원을 투자 유치했다. 올해 매출 목표는 1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5배 늘어난 것이다. 내년 목표는 30억원이다. 현재 직원수가 35명인 것을 감안하면 매출이 40억원을 넘어서면 흑자 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대표는 "머크, 써모피셔 등과의 사업이 가시화되면 매출 성장세는 더 빨라질 것"이라며 "내년 말 또는 2027년 초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박영태 바이오 전문기자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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