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국방·조선 등 전략 산업에서 세계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파격적 국가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초대 원장은 9일 이재명 정부를 향해 과학기술 정책의 거버넌스 혁신을 제안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가 개인의 삶과 산업, 기업과 국가의 모습까지 바꾸는 역사의 변곡점에서 서있다”며 “미·중 패권 전쟁으로 새로 형성되는 세계 체계는 변화를 선도하는 순발력을 갖춘 대한민국에 오히려 기회”라고 강조했다.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대학 운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한다는 쓴소리도 나왔다.
김우승 전 한양대 총장은 “한국의 대학은 정부 예산을 따는데 급급하다”며 “각각의 대학이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 AI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스스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면 정부 예산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방법론으로는 ‘대학 연구 이력제’ 도입을 제시했다. 그는 “이력제를 도입하면 정부 사업마다 대학을 평가하는데 많은 돈과 에너지를 허비할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AI 칩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원천 기술을 개발한 김정호 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제고를 위해선 자율성 확보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HBM를 육성한다고 정부 조직을 만드는 건 반대한다”라며 “정부 지원은 하드웨어에 초점을 맞추고, 개발은 기업과 과학기술인들에게 온전히 맡겨야 한다”고 했다.
이혁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대만의 반도체 성장을 예로 들며 “인재 양성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2000년 초반 반도체 외에 살길이 없다고 판단한 대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반도체를 가르칠 대학교수를 대거 뽑은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한국은 외환위기 직후 이공계 인기가 떨어지고 의대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는 “대만국립대에는 반도체 전공 교수가 50명이나 되는데 서울대는 20명에 불과하다”며 “반도체 업계에선 교수 한 명 한 명이 중요한데 30명 차이면 엄청난 것이고 게다가 대만은 장학금 지원, 주거공간 제공 등의 혜택을 통해 동남아시아 이공계 인재를 엄청나게 빨아들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장은 또 당장은 아니더라도 반도체 정책을 총괄하는 독립 부처를 신설하는 방안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교육부, 국방부 등 각 부처에 혼재된 반도체 정책과 예산 관리를 단일 부처가 총괄해 정책 지속성과 효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소장은 “반도체부 혹은 반도체청, 반도체비서관 등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예산과 교수 및 학생 티오(TO), 연구 과제를 자체적으로 배정할 수 있도록 독립성과 행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성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산업 현장의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들의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짚었다.
그는 “정년이 끝난 ‘반도체 올드맨’들은 사실 전부 고급 인력”이라며 “이 인력들이 대학이나 연구소에 와서 후속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정부 지원과 10년 단위의 장기 프로젝트를 주면 반도체 인재 수급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