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남부의 백악관’으로 정치적 위상이 격상된 플로리다가 반도체 강국인 한국과 협력을 타진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기업 친화적 과세 정책과 최소한의 규제로 유명하다. 우주로 향하는 ‘미국 1번 터미널’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옛 공군 기지)도 이곳에 있다.
앨릭스 켈리 플로리다주 상무장관은 9일 본지 인터뷰에서 한국과 과학기술 분야 협력을 확대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켈리 장관은 “2023년 론 디샌티스 주지사와 서울을 방문해 첨단 테크 전문가들을 만났다”며 “플로리다의 공식 투자 유치 기관인 셀렉트플로리다가 오는 10월 한국을 다시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후보 자격을 두고 겨룬 디샌티스 주지사는 당내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다.
◇우주로 질주하는 ‘MAGA 반도체’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미국 연방정부는 텍사스, 콜로라도, 노스다코타, 루이지애나 등 10개 지역을 ‘국가 기술 혁신 거점’으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10년간 약 16억달러를 투입하는 ‘기술 엔진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주정부 가운데 ‘반도체 기술 혁신 허브’에 선정된 플로리다는 한국 반도체 기업과 대학, 연구소 유치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핵심은 플로리다 주정부가 초기 투자금으로 2억5000만달러를 들여 건설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네오시티’다. 차세대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와 반도체 패키징 집적 단지 건설이 목표다. 50년에 걸쳐 진행되는 초장기 프로젝트다.
네오시티 프로젝트의 중요한 축 중 하나는 우주방위산업 반도체 확보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첨단 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우주방산 반도체의 공급망 내재화가 국가 안보와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명시했다. 네오시티는 약 500에이커(2㎢)에 부지를 조성해 세계 최고 반도체 연구소인 벨기에 imec(아이멕)과 반도체 파운드리 스카이워터테크놀로지를 유치했다. imec USA와 스카이워터는 차세대 칩 패키징, 광소자 집적 기술을 우주방산 기술과 연계하기 위해 미 국방부, 항공우주국(NASA) 등과 논의하고 있다. 서울대도 최근 네오시티에 글로벌 연구센터인 SNU GRC를 열었다.
imec 등은 우주방산 반도체 조달을 위한 ‘트러스티드 파운드리’ 인증을 받고 플로리다를 국가 안보 전략 기지로 만드는 작업에 한창이다. 반도체 제조의 출발점인 전자설계자동화(EDA) 및 소재·공정 장비 분야 글로벌 선도 기업들도 플로리다에 진출했다. 3사 합산 글로벌 EDA업계 점유율 90%를 웃도는 케이던스, 시높시스, 지멘스EDA가 플로리다에 거점을 마련했다. 세계적인 장비 업체인 일본 도쿄일렉트론과 ‘소재 공룡 기업’ 듀폰도 가세했다.
◇세계 1위 방산 우주 생태계
플로리다는 ‘우주 일자리 조성 기금’을 마련하는 등 방산 관련 미래 공급망 생태계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TSMC를 유치한 애리조나주가 대규모 현금 보조금을 쏟아부은 것과 차별화했다. 이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3년 설립된 플로리다대 반도체연구소(FSI)는 주정부와 산업계, 학계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플로리다는 지난해 기준 반도체산업 종사자 약 1만7744명, 반도체 관련 사업장 396개로 미국 내 총고용 규모 5위, 전체 사업장 수 3위에 올랐다.
네오시티 관련 협력 단체인 네오시티링크의 제시카 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플로리다의 우주방산 노하우와 한국의 반도체 등 정밀 가공 제조 노하우를 교환하자는 수요가 커지고 있다”며 “우주와 반도체라는 교집합을 확대해 한·미 기술 협력을 경제·외교 동맹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