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AX 시대, 프라이버시와 혁신 균형을 위한 거버넌스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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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전환(AX)' 시대에 진입했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정보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국민 개개인이 인공지능(AI)의 일상적 활용 속에서 이를 실감하고 있다.

AI 기술이 인간의 감정과 행동, 습관까지 감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면서 제로 프라이버시(Zero Privacy)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로봇청소기, AI 냉장고 등 가정용 기기를 통해 우리 삶의 세세한 데이터가 수집되고, AI는 심지어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 알고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데이터 활용이 국민의 기본적 자유와 권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대한민국은 과거의 '사찰'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회다. AI가 프로파일링을 기반으로 사람을 분류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구조는, 자칫 국가나 기업이 빅브라더가 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 정보기관이나 외국 기업이 이러한 정보를 쉽게 접근할 수 있다면 데이터 주권의 침해 우려도 커진다. AI의 고도화가 편익을 주는 동시에 새로운 리스크를 불러오는 이유다.

결국 AI 시대에도 데이터 프라이버시는 지켜져야 할 기본적 가치다.

개인정보 보호 체계는 더욱 정교하게 유지돼야 하며, 단순한 규제가 아닌 '동적인 개념'으로서 활용과 보호의 균형점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이는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기술·맥락·사건별로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개인정보 거버넌스는 이 균형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핵심적인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개인정보 보호 법제는 이러한 전환기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 규율체계는 '수집-이용-제공'이라는 선형적 흐름을 전제로 분절적으로 구성돼 있으나 AI 기반의 데이터 활용은 수집과 이용, 제3자 제공과 위탁이 복합적으로 동시에 일어난다.

예를 들어 AI 냉장고가 내부 재고를 스스로 판단해 계란을 주문하는 과정에서는 사용자의 건강정보, 위치정보, 결제 정보까지도 외부 플랫폼과 자동으로 연계될 수밖에 없다. 이를 기존의 단절된 규제 틀로 관리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며, 결국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인공지능(AI) 시대 개인정보 거버넌스 방향성. ⓒ최경진교수인공지능(AI) 시대 개인정보 거버넌스 방향성. ⓒ최경진교수

AI 시대 개인정보 개념도 재정의가 필요하다. AI가 결합되면서 기존에는 개인정보로 취급되지 않은 사물인터넷(IoT) 정보도 식별이나 결합의 '가능성'이라는 이유로 개인정보 범주에 편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법적 규제의 범위는 무한히 확장될 수밖에 없고, 이는 규제 피로도를 가중시키는 동시에 AI 기반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일본이 '개인 관련 정보'와 같은 완충 지대 개념을 도입한 것은 우리에게 규제의 유연성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지금처럼 이분법적 기준에만 의존한다면, 현실과 법 사이의 괴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정보 개념의 재검토이든 세상의 모든 정보가 개인정보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개인정보처리기준을 합리화하는 방식이든 전반적인 규율체계의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시대 변화 속에서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이 거버넌스 체계의 중심으로서, 단순한 규제자가 아니라 균형을 조율하는 조정자이자 설계자로서 기능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개인정보권의 보호와 침해 발생 시 신속하고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제공하는 '세이프가드(safeguard)'로, 기업에게는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통해 안심하고 AI 서비스를 개발·운영할 수 있도록 돕는 '세이프하버(safe harbor)'로 작동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조직과 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상임위원의 증원과 전문성 확대, 내부 조직 강화, 개인정보분쟁조정위원회 기능 강화, 그리고 개인정보 정책 기획이나 연구, 관련 첨단 기술의 개발이나 검토, 글로벌 개인정보 거버넌스와의 교류협력 등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우수인력으로 구성되는 싱크탱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개인정보 거버넌스는 국민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일반 국민의 목소리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실질적인 보호수준을 높일 수 있는 국민 체감형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가야 한다.

피해 구제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개인정보 보호 기금 마련이 그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과징금을 단순히 징벌에 그치지 않고 자율 규제 촉진, 프라이버시 보호 기술 개발, 국민 접근성 제고나 실질적인 피해 구제를 위한 국민 체감형 제도적 기반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 지역 기반의 통합 권익 증진 센터를 설치해 개인정보 감수성 및 국민의 개인정보보호 리티러시 향상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함께 국민이 개인정보 민원이나 상담, 피해 구제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국내 거버넌스의 개편은 국제 규범이나 글로벌 거버넌스와의 정합성 확보와도 연결되어야 한다.

AI를 중심으로 글로벌 사회에서는 데이터 보호주의와 자유주의 간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대한민국도 이 속에서 전략적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무역과 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국가로서 글로벌 AI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개인정보 규제의 전략적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개인정보 보호가 통상에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개인정보 보호가 무역과 통상에서 장애물이 아닌 필수적 인프라로 인식돼야 하며 개인정보보호법과 통상 정책은 충돌이 아니라 보완적 관계로 재설정돼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 바람직한 개인정보 거버넌스. ⓒ최경진교수인공지능(AI) 시대 바람직한 개인정보 거버넌스. ⓒ최경진교수

나아가 개인정보 보호라는 영역이 AI와 함께 확장되며 헌법적 가치의 재해석이 요구된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주요한 헌법적 기초가 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17조가 주로 강조되어 왔지만 다른 한편 헌법 제127조가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의 개발을 중요하게 명시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AI는 과학기술 혁신과 국민 기본권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헌법적 기초로서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최첨단 과학기술인 AI의 혁신을 뒷받침하는 제127조는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조화롭게 해석되어야 할 공동의 가치로 인식해야 한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개인정보보호법을 중심으로 한 개인정보 거버넌스는 이제 단순한 법 집행기관이나 규제가 아니라, AI 시대의 사회적 안전망이자 국가 경쟁력의 핵심 인프라로 인식돼야 한다.

앞으로 AI가 더욱 발전하고, 그 영향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수록 법과 제도를 통해 이 복잡한 사회적 기술적 교차점에 질서와 예측 가능성을 부여해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개인정보 보호와 AI 혁신은 충돌적인 목표가 아니라, 상호 조화 속에서 공존 가능한 가치를 지닌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러한 가치를 조화롭게 구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며, 그 중심에는 균형 잡힌 개인정보 거버넌스가 자리해야 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

〈필자〉가천대 인공지능(AI)·빅데이터정책연구센터장이다. 데이터·정보통신기술(ICT)·개인정보보호 법 연구자로 관련 법·정책 전문가다. 현재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 한국정보법학회 수석부회장, UN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도 역임했다. 데이터와 ICT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법·제도 개선과 정책 추진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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