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선 한국데이터산업협회(KODIA) 회장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12일 취임 50일을 맞아 첫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30년까지 인공지능(AI) 3대 강국에 진입하겠다. 2030년까지 AI 학습과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20만장을 확보하고, AI를 통해 잠재성장률 3% 회복에 이바지 하겠다”고 말했다.
“그저 3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미·중과 겨뤄도 동등한 수준의 AI 기술 역량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재명 정부는 8월 13일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AI-에너지 고속도로로 다시 뛰는 대한민국' 비전을 제시하면서 '세계 1등 AI 정부'를 이루겠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AI 3대 강국 도약과 잠재성장율 3% 회복을 위해서는 과거의 성공 경험과 현재 우리가 처한 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데이터 혁명에 앞서 우리가 이룬 정보화 혁명과 전자정부의 성공 경험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 정보화 혁명에 성공함으로써 2010년 이후 6년간 UN 전자정부 평가에서 세계 1등을 차지했다. 1990년대 후반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국가'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 정도로 정보기술(IT) 경쟁력이 약했던 환경에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정보화 혁명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가 되었을까? 그러한 성공 경험은 AI 3대 강국 진입과 '세계 1등 AI 정부' 목표 달성에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달성 요건 :인프라, 인재, 기술, 그리고 시대적 과제 해결
정보화 혁명의 성공요건을 인프라, 인재, 기술로 본다면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이들 3대 요건을 대체로 잘 갖추었다. △인프라 측면에서 정보통신부가 중심이 되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광통신망 구축 △IT 인재 10만명 양성 △3대 통신사와 대중소 IT기업 중심으로 인터넷, 모바일 통신, 소프트웨어(SW)와 운용체계 등 기술 진보도 있었다.
요건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시대적 과제에 대한 문제 인식과 해결을 위한 확고한 의지다. 정보화 혁명 당시 시대적 과제는 IT를 통해 '행정의 비효율' 극복이었다. 그것은 전자정부(e-Government)로 표출되었다. 기획예산처는 2000년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국가'를 만들겠다는 국정 목표 하에 전 부처 정보화예산 편성 책임자를 전산직에서 일반직으로 교체하고, 국가재정에 전자정부 개념을 처음 도입했다.
당시에도 변화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기획재정부가 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와 함께 추진한 G4C사업이다. G4C는 주민등록·부동산·세금·자동차 등 4대 민원서류를 온라인 열람·발급하는 사업이고, 그것이 확대돼 정부24 포털이 됐다. G4C는 은행에서 대출 하나 받으려 해도 전 국민이 구청·등기소·세무서를 돌아다녀야 했던 엄청난 사회적 비용(social cost)을 절감할 목적으로 추진됐지만 정작 주민등록번호 유출을 우려한 행정안전부 주민등록과장의 반대를 극복해야만 했다.
조달행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추진했던 '나라장터'도 조달청 직원들의 내부 반발 극복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부처의 상황도 크던 작던 간에 유사했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행정부담 경감을 위해 교육행정 정보화, 대법원은 등기업무 효율화를 위해 등기 전산화를 추진했다. 청와대도 2001년 전자정부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전자정부 11대 과제를 발표했다. 이후 31대 과제로 확대되었고, 디지털 플랫폼 정부, '세계 1등 AI 정부'로 이어지고 있다.
정보화 혁명 성공은 3대 요건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것만으로 세계 1등 전자정부로 평가된 것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당시 정부가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고 있는 행정 비효율 해소를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전자정부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기에 비로소 세계 1등 전자정부로 평가 받을 수 있었다고 본다. 3대 요건은 정보화 혁명 성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보화 혁명 성공 경험과 데이터 혁명 시대 AI 강국 도약의 요건.◇AI 강국 도약을 위한 우리나라의 여건 : 3대 요건의 구비와 이해관계 조정
그렇다면 우리나라 AI 경쟁력은 어느 수준일까? 통상 글로벌 6~7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AI 경쟁력은 영국의 Tortois 글로벌 AI 인덱스에서 2024년 기준 6등(40.3점, 1등 미국 100점, 2등 중국 62.5점)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AI Vibrancy 툴에서 평가한 AI 경쟁력 글로벌 순위는 2024년 기준 세계 7등으로 평가되고 있다.
3대 요건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인프라에서 거대언어모델(LLM) 가동에 필요한 데이터, GPU와 전력은 충분하지 않다. 국내 GPU는 0.5~1만 장 수준으로 미국의 100~200만 장, 중국의 70~100만 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영국의 Tortois AI 인덱스에 따르면, 인재와 투자에서 AI 경쟁력은 12등과 18등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는 AI 인재 순(純)유출국이다. AI 기술력에서 하버드 벨퍼센터은 우리나라를 글로벌 4등으로 평가하고 있다.
AI 강국 도약을 위해서 극복해야 과제가 많다. 이해관계자 설득이나 정책 조정도 만만치 않다. 가명정보와 익명정보가 합법적으로 데이터를 분석·결합하는데 유용하지만,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 입장에서 비용·규제 장벽 애로를 제기하고 있다. 저작권의 공정이용(fair use)으로 인정되는 TDM 면책규정도 아직 입법화되지 못했다.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LLM 모델을 가동하는데 필요한 전력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의 하나이다.
그보다 선결 과제는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이다. AI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다. 질 좋은 데이터가 입력되어야 질 좋은 산출물이 나온다. 우리나라 공공데이터 개방수준은 OECD 1등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활용하기 어렵게 제공되고 있다. 수요기업은 데이터 정제 작업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하나의 데이터를 놓고 수만·수십만 기업의 실무자들이 정제작업이 시간과 비용을 쏟아 넣는다면 과연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클 것인가?
◇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 : 시대적 문제 인식, 우선 순위에 입각한 AI 정책과 그 효과
기술은 인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미국에서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빅테크 중심으로 인터넷 데이터 글로벌 독점과 글로벌 패권 추구 과정에서 AI가 발전했고, 중국은 공공안전·사회통제 목적으로 안면인식, 홍채인식 중심으로 AI가 발전했듯이, 우리나라도 우리 사회에 당면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AI가 기여해야 한다.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3대 요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대적 과제의 해결, 우선순위에 입각한 정책목표 설정이다.
정보화 혁명 시대에는 행정 비효율 극복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 전자정부 세계 1등 국가가 되었으나, 지금은 AI가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기술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공감되는 목표가 잘 보이지 않는다.
AI를 활용해 해결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과제는 과연 무엇일까? 예시로 든다면 정부차원에서는 'AI에 기반한 미래 예견적인 국정운영'이 될 수 있다. '세계 1등 전자정부'가 효율적이고 일 잘하는 정부였다면, '세계 1등 AI 정부'는 전자정부를 통해 구축된 데이터와 LLM, 디지털 트윈 등 기술을 기반으로 미래 경제·사회·재난 등을 사전에 예측하고 위험을 사전에 줄이며 자원을 선제적으로 배분하는 똑똑한 정부일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想像力)을 동원한다면, AI와 관계가 없어 보이는 국가 난제의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국가에서 많은 돈을 들여도 성과가 미미한 저출생 및 지방소멸 문제, 내 집 마련을 위한 청년들의 고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서민들이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돈의 위력 앞에 사법 정의가 무력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판례 개방을 통한 'AI 법률 비서' 서비스도 우리 사회에 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시대적 과제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방점을 둔 도메인별 AI 정책을 추진한다면 △개인정보보호나 저작권 등 이해관계자 설득 명분이 확립돼 데이터 수집이 용이해지고 △데이터가 어디 쓰일지가 명확하기에 데이터 표준화와 품질 향상이 용이해지며 △AI 인프라, 인재양성 및 AI 기술 투자에 대한 국민적 지지 확보나 △AI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절실한 문제를 해결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최고 AI 강국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송병선 한국데이터산업협회(KODIA) 회장 bssong1@gmail.com
〈필자〉행정고시 30회로 경제기획원에서 공직을 시작해 기획예산처 정보화예산팀장, 재정개혁2과장, 산업정보예산과장, 기획재정부 연구개발예산과장, 기획재정담당관, 주뉴욕 재정경제금융관, 국유재산심의관,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기획단장 등을 역임하고 한국기업데이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금년 5월 한국데이터산업협회 2대 회장에 취임했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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