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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다시, 스크린 앞으로

1 week ago 5

[한경에세이] 다시, 스크린 앞으로

모두가 빨리 소비하는 시대다. 손끝으로 넘기며 보는 영상, 몇 초면 끝나는 클립, 짧고 간편한 이야기들. 이제 전자레인지로 즉석밥을 데우는 시간이면 몇 편의 이야기를 소비하고도 남는다. 터치 두 번이면 바로 건너뛸 수 있는 장면들 속에서 우리는 어느새 깊이보다는 속도에, 여운보다는 쾌감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영화관에서 한 편의 영화에 오롯이 몰입했던 건 언제였을까?’

모든 것이 빨라져만 가는 시대에 영화는 어쩌면 조금 불편한 콘텐츠일지 모른다. 어둡고 조용한 공간에 다른 관객들과 따로 또 같이 앉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상에 두세 시간 동안 스스로를 몰입시켜야 하니까. 짧고 빠름에 너무나 익숙해진 요즘, 영화처럼 집중과 시간을 요구하는 콘텐츠는 점점 더 낯설어진다.

하지만 바로 그 ‘긴 호흡’에 영화만의 고유한 감동과 울림이 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오랜 시간 쏟아낸 모든 감각과 기술의 총천연색. 대사와 침묵, 카메라의 시선, 음향의 타이밍, 배우의 제스처와 숨소리-모든 미장센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종합 예술. 그것이 큰 스크린을 통해 관객의 눈앞에 펼쳐질 때, 비로소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무용수의 몸짓에 감정을 포갤 때처럼, 오케스트라의 격한 선율에 함께 전율할 때처럼 영화 또한 ‘함께 참여하는 예술’이다. 휘발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함께 보는 관객들과 숨을 맞추며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이야기에 온전히 잠길 수 있는 그 경험, 가장 깊은 몰입이 일어나는 공간, 그것이 우리가 영화관을 찾는 이유다.

누군가의 눈물이 흘렀던 자리, 처음으로 웃음을 터뜨렸던 장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 대사. 스크린은 감정의 교차로이자 마음이 마음을 만나는 공감의 공간이다. 우리는 그렇게 스크린 앞에서 수없이 많은 감정을 함께 겪으며 소중한 기억들을 만들어 내왔다.

스토리텔링의 방식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기술과 소비 환경의 변화는 콘텐츠 접근 방식을 바꿨고, 이는 또 새로운 창작의 기회가 됐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보편화, 숏폼 콘텐츠의 유행은 콘텐츠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고 디즈니 역시 스튜디오뿐 아니라 디즈니+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써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기억하고자 한다. 디즈니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던 출발점도 ‘스크린’이었다는 것을.

누군가는 말한다. 긴 호흡의 콘텐츠는 이제 너무 어렵고 진부한 방식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믿는다. 진짜 이야기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피어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결국 다시 스크린 앞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영화관은 오롯이 하나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빠져들 수 있는 통로며, 그 속에서 우리가 만나는 이야기는 그저 ‘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스크린 앞으로 향한다. 마음이 가장 깊이 움직이는 그 순간을 다시 만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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